IMF 20년, 위기 다시 오나…실물지표 흔들리고 불확실성 증폭

IMF 20년, 위기 다시 오나…실물지표 흔들리고 불확실성 증폭

입력 2017-01-06 09:24
수정 2017-01-0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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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수출·실업률 악화…외환 등 대외건전성 지표는 양호

정책·금융팀 =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년째를 맞는 정유년 정초부터 ‘한국 경제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위기를 부인하지만, 올해 경제정책의 초점을 리스크 관리에 맞추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5일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화두는 첫째도 리스크 관리, 둘째도 리스크 관리”라고 말했다.

◇ 고개 든 위기설…대외환경·지표악화·정치혼란 복합

위기론은 대외 불확실성, 불안한 경제지표, 정치혼란이 복합되면서 비롯됐다.

대외환경은 극도로 불투명하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중국 경제 불안,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미국 신정부 출범 등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이 더 짙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는 시장의 예측보다 빠르고 미국 새 정부를 이끌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꼽힌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몽니는 끝이 없다.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세계 정치불안까지 우려된다.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상태를 의심케 하는 지표들은 속출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대로 굳어지고 있으며 수출은 58년 만에 2년 연속 감소했다. 청년실업률, 소비자 심리 등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수준까지 악화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고령화, 양극화, 1천300조원이 넘는 가계 빚 등 구조적 문제도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정경유착은 여전하고 대·중소기업의 상생은 크게 개선되지 않는 등 기업환경도 20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안팎으로 불안이 고조되면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2017년에 위기가 재발한다는 ‘10년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 경제 취약 고리 늘고 성장률·수출 뒷걸음질

위기론자들은 경제의 활력이 20년 전보다 추락했다고 본다.

IMF 외환위기 직전 5년간 경제성장률은 6.2∼9.6%였다. 2011∼2015년 성장률은 2.3%∼3.7%로 뚝 떨어졌다. 2016년과 2017년에도 2%대 성장이 유력하다.

경제 규모가 커져 성장률을 숫자로만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지만 최근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인 3%대를 밑도는 것은 문제가 있다.

‘캐시카우’인 수출은 1995년 30.3%, 1996년 3.7% 등으로 외환위기 무렵에도 증가세였지만 최근에는 2015년 -8.0%, 2016년 -5.9%로 2년 연속 감소했다.

부채, 실업 등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는 취약 고리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IMF 외환위기 직전 1996년 52.7%였으나 지난해 상반기 90.0%로 급등했다.

지난해 월간 청년(15∼29세) 실업률은 1999년 6월 통계청이 실업자 기준을 구직기간 1주에서 4주로 바꾼 이래 역대 최고 기록을 7차례나 새로 썼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 기준 94.2로 7년 8개월 만에 최저로 내려갔다. IMF 당시 지표가 없어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수준에 그치는 정도였다.

상인들이 주요 고객인 A은행의 노량진역지점 부지점장은 “외환위기 때보다 장사가 안돼 월세 내기도 버겁다고 하소연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 8월 70.2%에 그쳐 같은 달 기준으로 1998년(65.4%) 이후 가장 낮았다. 같은 해 9월 71.5%로 상승했지만 10월 70.5%로 다시 떨어졌다.

소비자도 기업도 상인도 암울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물경기만 놓고 본다면 현재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1997∼98년 외환위기와 같다”고 진단했다.

◇ 경상수지·외환·국가신용등급 양호…“거시 펀더멘털 탄탄”

외환이 없어 국가 경제가 치명타를 입는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89억9천만달러 흑자로 57개월 연속 흑자를 지속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현재 3천711억달러다. 외환위기 당시 300억달러대 수준의 12배가 넘는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순위는 세계 8위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AA’, 무디스 ‘Aa2’, 피치 ‘AA-’ 이다. 3개 신용평가사의 등급은 한국이 받은 역대 최고 등급이다. 중국과 일본보다 높다.

지난해 발생했던 브렉시트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때에 다른 신흥국과 달리 한국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아 위기에 강한 면을 보였다.

한국 경제에 비관적인 일본 노무라증권도 “한국의 거시 펀더멘털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탄탄하다”고 평가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잠재성장률 하락, 가계부채 등의 문제가 있지만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11월 경상수지 흑자는 전년 동월보다 8.6% 줄었고 지난해 1∼11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909억1천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7.1% 감소했다. 벌어들이는 달러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외환보유액도 3개월 연속 감소세이고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수준보다 낮다는 주장도 있다.

◇ “재정·통화 총체적 대응 필요”

정부는 현재 상황이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외건전성이 나쁘지 않고 세계 경제도 이전 위기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가 위기를 말하면 없던 위기도 발생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움도 담겨 있다.

정부는 위기를 입 밖으로 내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하고 고령화, 부채 등 구조적 문제에 글로벌 불확실성까지 겹쳐있어 경제가 저성장 탈출과 고착화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현재 경제가 말 그대로 1997년, 2008년 위기와 같지는 않지만,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여러 정책을 총체적으로 동원해 경기 하강을 막고 수출을 띄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필요하다면 추경을 편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수출이 호조를 보여 설비가 가동되고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도록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는 “지금 같은 위기국면에서는 총체적인 재정과 통화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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