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계란 유통되자 매장에 물량 쏟아져
“2주 전만 해도 텅텅 비어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계란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영천시장 초입의 한 슈퍼마켓을 찾은 주부 최모(52) 씨는 매장 한 쪽에 가득 쌓여있는 30개들이 판란을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
최 씨는 “2주 전만 해도 30개들이 판란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많아졌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정부가 외국산 계란을 수입하니 그동안 사재기했던 물량이 쏟아져나온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런 현상은 이 슈퍼마켓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 슈퍼마켓과 마찬가지로 30개들이 판란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종로구 무악동의 H슈퍼마켓도 이날 저녁에는 30개들이 판란뿐 아니라 다양한 갯수의 다른 판란들도 매대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가격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현재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서는 30개들이 한 판이 7천원대에 판매되고 있지만 대형마트보다 구매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슈퍼마켓에서는 그동안 30개들이 한 판에 1만원을 훌쩍 넘은 곳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2주 전만 해도 1만1천800~1만3천원을 호가하던 영천시장 인근 슈퍼마켓의 30개들이 한 판 가격은 25일 8천950~9천500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H슈퍼마켓 점원은 “최근 3~4일 사이 계란 수급이 상당히 원활해지면서 가격도 하락했다”며 “아무래도 외국산 계란 수입 등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설 연휴 때 음식 장만에 쓸 계란을 사러 왔다는 주부 박모(44) 씨는 “3주 전만 해도 30개들이 판란은 아예 물량이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걸 보니 ‘계란 대란’이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며 “옛날보다는 여전히 비싸지만 가격도 어느 정도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촉발된 계란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세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한 외국산 계란 수입 조치가 설 직전 계란값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계란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물량을 풀지 않고 있던 일부 생산농가들이 외국산 계란 수입 등으로 가격이 꺾일 기미를 보이자 서둘러 시장에 물량을 풀면서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형우 축산관측팀장은 “계란 수급 불안이나 가격 등락 등은 심리적 영향이 큰데, 외국산 계란이 수입되면서 계란값 상승세 억제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일부 생산농가에서 계란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량을 빨리 풀지 않았으나 미국산 계란이 수입되면서 가격이 꺾일 기미를 보이자 물량이 풀리면서 가격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계란 생산농가나 중간 유통상이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량을 쟁여놓고 있는 행위가 법률에서 금지하는 매점매석 행위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르면 사업자는 폭리를 목적으로 물품을 매점(買占)하거나 판매를 기피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겼을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같은 법률 제3조는 ‘물품을 생산·판매하거나 물품의 매매를 업(業)으로 하는 자 또는 용역의 제공을 업으로 하는 자’를 사업자라고 규정하고 있어 중간 유통상뿐 아니라 생산농가도 이 법에서 규정한 사업자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생산농가가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량을 쟁여놓고 풀지 않는 행위를 매점매석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그런 행위가 불법은 아닐 수 있지만 온 국민이 계란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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