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건 제주대 교수
중국 검주(黔州)에는 당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끌고 와 산 아래서 길렀다. 덩치와 목소리가 큰 이 낯선 동물을 본 호랑이가 혹시 산신령이 아닐까 두려워 가까이 가질 못했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큰소리치고 뒷발질하는 것 외엔 별 재주가 없음을 알고, 달려들어 잡아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검주는 지금의 귀주(貴州)로 고구려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 연남건의 유배지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서로 도우며 국사를 돌보던 세 아들은 주위의 이간질로 내분이 일어난다.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고구려는 내분까지 겹쳐 결국 당나라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보잘것없는 기량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야말로 검려지기의 당사자였다.
이렇듯 하찮은 재주를 믿고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고 화를 자초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우선 겸손함이 없다.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된 김굉필은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부탁으로 그의 아들인 조광조를 가르치게 된다. 어느 날 김굉필은 어머님께 보내려던 꿩고기를 고양이에게 도둑맞자 하인을 심하게 나무란다. 이를 본 조광조가 군자의 말씀이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직언하자 “네가 나의 스승이구나”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함이다.
이런 겸손함이 있어야 “전하의 좌우에는 오직 내시들과 궁녀들만이 있을 따름이니 전하께서 평소에 무슨 책을 보고 계시고,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어떤 말을 듣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이율곡의 만언봉사 같은 직언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독선과 독주만 있을 뿐이다. 겸손함은 곧 애정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덮인 나무들을 보고 제주 유배인 추사는 “시원찮은 나무들이 모두 매화가 되었다”(雜樹園村倂是梅)고 했다. 참으로 무릎을 치게 하는 표현인데 시원찮은 것들을 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힘이 바로 애정인 것이다. 겸손함과 애정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겸손함과 애정이 없으면 사람이 천박하고 경솔해진다. 그것이 바로 검려지기요 검려기궁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번만은 잘 뽑아야 한다. 정치인을 믿느니 사기꾼을 믿는 게 낫다고 하지만 최근에 우리가 겪은 국정 농단의 참담한 비극을 생각하자면 아무리 심사숙고해도 모자람이 없다. 큰소리나 치고 뒷발질이나 하는 후안무치의 검려지기 후보자들은 반드시 골라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함과 애정으로 이 사회의 어려운 계층들을 위할 줄 알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고 세계만방에 줏대를 세움으로써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바람이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대와 달리 지난 시간이 늘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단초만은 마련돼야 한다. 혹한의 광장에서 우리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갈등했던 것도 이런 바람 때문이지 않았는가. 이런 바람이 남의 일이 아니라면 당나귀의 재주밖에는 없는 검려지기의 후보자를 골라내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인 것이다.
2017-05-03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