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부인,의문사 英사업가와 연인?

보시라이 부인,의문사 英사업가와 연인?

입력 2012-04-18 00:00
수정 2012-04-18 11:5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英 더 타임스 “단순한 동지 아닌 핑크빛 연인사이” 폭로

의문사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와 그를 청산가리로 독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구카이라이(谷開來)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중국의 민감한 차기 권력승계 시기와 맞물려 정변으로의 조사 확대조짐까지 보이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사건의 단서를 푸는데 두 사람의 관계를 알지 않고선 무리다.

더구나 구카이라이는 한때 잘나가는 변호사였고, 정치적 거물이 되겠다는 야심하에 중앙 정치무대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해온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시 서기의 부인으로서 주변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던 인물이다.

이번 사건은 보시라이 부부가 축재한 돈의 해외 밀반출 문제에 휘말려 청산가리 음독 살인까지 갔다는게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중국과 영국 언론들도 대체로 이런 해석 쪽에 무게를 실었다.

물론 헤이우드가 영국 정보원으로 활약하다 변을 당한게 아니냐는 일부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두 사람이 단순한 금전 거래관계에 머문 게 아니라 ‘핑크빛’ 연인 사이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았다는 보도는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 웹사이트 몇몇이 두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보도했었다.

더 타임스는 그러나 이날 영국과 중국 소식통 2명의 증언을 직접 취재해 보도했다. 보시라이 측근들과 많은 접촉을 하고 있는 충칭시의 유명한 학자 왕강은 “두 사람 사이에 확실한 로맨틱한 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구카이라이의 지인인 또다른 소식통도 익명을 요구, 그녀가 지난 2001년 영국에 기거할 때 허름한 아파트에서 헤이우드와 동거한 것처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헤이우드는 보시라이 부부의 재산 문제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고 부연했다.

구카이라이는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의 아버지와 항일운동 투사 출신인 어머니가 문화혁명 때 모두 구금되면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화혁명 말기 대입시가 부활된 이듬해인 지난 1978년 구카이라이는 명문 베이징대 법대에 합격, 나중에 남편이 될 보시라이와 대학 동문이 됐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1984년이다. 보시라이가 다롄(大連)시의 낙후한 시골 진(金)현의 부서기로 가 있을 때 구카이라이가 교수와 현지 조사차 갔다가 만났다.

이때 보시라이에 호감을 느낀 그는 당시 미국 모 대학에 장학생으로 선발돼 있었으나 과감히 유학을 포기하고 보시라이 옆에 남기로 했다. 보시라이는 부인이 있었으나 후에 이혼하고 구카이라이와 재혼했다.

이처럼 돈독했던 부부 사이가 갈라진 것은 남편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인에게 독자 행보를 삼가라는 압력을 가하면서부터였다는게 왕강의 설명이다.

왕강은 더 나아가 “보시라이 부부는 완벽한 가정인 것처럼 보이길 좋아했으나 진실한 감정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면서 “때마침 불행한 헤이우드가 나타났고 구카이라이는 자연스럽게 헤이우드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와 절연한 이유는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사실 구카이라이는 남편이 정치국원으로 성장할 때 영국으로 이사해 회사를 차렸고, 아들 보과과(薄瓜瓜)를 아스콧 인근의 패플위크 사립고교에 등록시킨데 이어 고가의 사립 해로우스쿨에 진학시켰다.

지난 2001-2002년 기록에 따르면 구카이라이가 기거한 아파트의 주소는 부어너마우스 소재 키스톤 하우스로 돼 있는데, 헤이우드는 이곳을 정기적으로 드나들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의 아들 보과과와 함께 아파트를 나서는 장면도 종종 목격했었다고 소개했다.

헤이우드는 구카이라이를 찾았을 땐 주로 아파트의 오른쪽 방에 머물렀고, 아침이면 담배를 손에 쥐고 창가에 기대어 서있곤 했으며, 구카이라이는 주방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헤이우드는 이 아파트를 자주 드나든 영어를 잘 구사하는 3명의 기업가 중 한 명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소식통들은 구카이라이가 최근 몇 년 사이 점점 더 변덕스런 행동과 편집병 증세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이런 비정상적 행동은 남편 보시라이와의 원만치 못한 결혼 생활에 원인이 있었다는게 왕강의 분석이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