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전 호주 애들레이드 해변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 밝히려 발굴

73년 전 호주 애들레이드 해변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 밝히려 발굴

임병선 기자
입력 2021-05-19 14:58
수정 2021-05-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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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호주 애들레이드의 소머턴 해변에서 발견된 남성 시신. 정장에 타이를 맨 차림이다.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콜드 케이스(미제 사건)로 꼽힌다. 통상 주검 사진을 쓰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도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서인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사진을 게재했다. 텔레그래프 캡처
1948년 호주 애들레이드의 소머턴 해변에서 발견된 남성 시신. 정장에 타이를 맨 차림이다.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콜드 케이스(미제 사건)로 꼽힌다. 통상 주검 사진을 쓰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도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서인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사진을 게재했다.
텔레그래프 캡처
호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경찰이 19일(이하 현지시간) 새벽부터 불을 밝힌 채 애들레이드시 묘지에 묻힌 묘 하나를 파헤쳐 끄집어냈다. 묘비명은 이렇다. ‘알려지지 않은 남성’

 현지 매체 나인 뉴스에 따르면 생각보다 점토질이 단단하고 문제의 유해가 관 속에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확신하지 못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이날 오후 관을 꺼냈다. 이제 경찰은 법의학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유전자 분석 기법을 활용해 이 나라 역사에 가장 이상한 시신의 신원을 70년이 훌쩍 지나서야 밝혀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영국 BBC 방송과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1948년 12월 1일 애들레이드의 소머턴 해변에서 이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방파제 담에 기댄 채 숨져 있었는데 정장 차림에 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정장의 주머니 속에서는 신원을 증명할 만한 것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신원도 파악할 수 없었고 죽음의 원인도 규명할 수 없었다. 해서 호주인들은 냉전시대 스파이였는데 암살됐다거나 연인에게 보복 살해당했다거나 여러 갈래 억측만 늘어놓았다. 지금 우리의 한강 의대생 의문사처럼 모든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이런저런 억측을 늘어놓았다.

 그가 첩자 의심을 산 것은 그럴 듯한 소지품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한달쯤 뒤 그의 가방이 애들레이드 철도역의 보관소에 맡겨진 것이 확인됐다. 의문의 남성이 주검으로 발견되기 하루 전에 이 가방을 맡긴 사실이 확인됐다. 가방에서는 옷가지들이 나왔는데 옷들의 라벨은 다 뜯겨져 있었고 대신 암호 같은 글씨가 박음질 돼 있었다. 바지를 수선소에 맡겼을 때 박음질한 글자는 킨(kean)이나 킨(keane)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책에서 찢어낸 듯한 종이도 나왔는데 페르시아어로 “타맘 슈드”라고 적혀 있었다. “끝났어”란 뜻이다. 나중에 경찰이 이 종이 조각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제보해달라고 했더니 한 기업인이 차 뒷좌석에 뒀던 책의 갈피가 뜯겨져 있었다고 신고했는데 종이 조각이 떨어져나간 자국과 일치했다.
위는 호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경찰이 19일 새벽부터 애들레이드의 웨스트 테라스 묘지에 묻힌 신원 미상 남성의 관을 꺼내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 아래는 오후에 관을 꺼내 옮기는 모습이다. 관의 주인은 지난 1948년 이 도시의 소머턴 해변에서 변시체로 발견돼 이곳에 그냥 묻혔는데 이제 훨씬 발전된 DNA 분석 기술을 활용해 신원을 밝히기 위해 발굴됐다. 애들레이드 EPA 연합뉴스
위는 호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경찰이 19일 새벽부터 애들레이드의 웨스트 테라스 묘지에 묻힌 신원 미상 남성의 관을 꺼내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 아래는 오후에 관을 꺼내 옮기는 모습이다. 관의 주인은 지난 1948년 이 도시의 소머턴 해변에서 변시체로 발견돼 이곳에 그냥 묻혔는데 이제 훨씬 발전된 DNA 분석 기술을 활용해 신원을 밝히기 위해 발굴됐다.
애들레이드 EPA 연합뉴스
 11세기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이며 ‘루바이야트’로 유명한 오마르 카이얌의 시 구절이었다. 이 책은 풀리지 않은 암호들이 많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첩자 소문을 사람들에게 믿게 한 것 중에는 당시 캔버라에서 옛소련과 내통한 첩자들을 검거한 직후였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가방 속에서는 전화번호도 하나 나왔는데 주검이 발견된 곳 근처에 살던 여성 제시카 톰프슨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경찰에 알지도 못하는 남성이라고 부인했고, 주검 사진을 보여줘도 정말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달 묘 발굴 계획을 발표한 비키 채프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검찰총장은 “70년 넘게 사람들은 이 남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죽었는지 추측만 했다”며 “강렬한 대중의 관심”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DNA 프로파일을 얻으면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콜드케이스(미제 사건) 가운데 하나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주의 부검 활동을 돕는 앤느 콕슨 박사는 “지금 우리의 DNA 분석 기술은 시신이 발견됐던 1940년대보다 분명히 몇 광년은 더 앞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런 종류의 검사가 아주 복잡하긴 하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밀을 풀 것이라고 다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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