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17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함명춘 시인은 “무늬만 중견이다. 이번 시집을 낸 뒤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시에 더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좀 더 천착해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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