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의 법문(法問)

산벚나무의 법문(法問)

입력 2012-04-15 00:00
수정 2012-04-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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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입적(入寂)한 지 2년이 넘은 법정(法頂) 스님은 생전에 늘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집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자연과 함께 사셨던 스님도 정작 폐암으로 돌아가신 걸 보면 인명(人命)은 정말 재천(在天)인가 봅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겨우내 시렸던 옆구리를 파고듭니다. 마음도 몸도 포근해지고 나른해집니다. 봄맞이하러 멀리 남쪽까지 애써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척에 있는 동네 산에만 가도 봄물 소리가 아기 오줌 누는 소리 같습니다. 이렇듯 산뜻한 아침 같은 계절에 인명, 재천 운운하며 ‘무거운 말’을 꺼내는 이유는 뭘까요.

오랜만에 산에 올라 나의 친구, 산벚나무를 만나고 나서 느낀 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겨우내 고생 많았다. 많이 추웠지?” 벚나무는 저의 체온을 받아들여 따뜻해졌습니다. 자주 찾아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오랫동안 껴안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제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복잡하고 힘들었던 일, 생각들이 모두 봄눈 녹듯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풀어진 마음 사이로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는 게 별거 아니야.”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生老病死)은 이 세상 누구도 막지 못하는 것. 이왕이면 죽기 살기로 남을 짓밟으며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알콩달콩, 세상을 한껏 사랑하며 사는 게 훨씬 현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벚나무를 통해 스님의 법문(法問)을 다시 듣는 것 같았습니다.

발행인 김성구(song@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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