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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원내대표·총리… ‘포스트 JP’ 충청의 거목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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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10-14 18:11 정치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이완구 前국무총리 별세… 향년 71세

경제기획원·경찰 이어 1995년 정계 입문
3선 의원·자민련 사무총장 등 두루 역임
충청대망론 주자… ‘성완종 리스트’ 발목
무죄 확정에도 “세대교체 기여” 정계 은퇴

이완구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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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전 국무총리

충청 출신의 대표 보수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별세했다. 71세. 고인은 2012년에 골수이식과 항암치료로 극복했던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이 재발해 투병 생활을 해 왔고 며칠 전부터 위중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195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전 총리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기획재정부 전신)에서 근무했다. 이후 경찰로 자리를 옮겨 최연소(31살) 서장, 최연소 경무관 타이틀로 홍성경찰서장, 충남·충북지방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청양·홍성에 출마, 신한국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충남에서 당선돼 주목받았다. 15·16·19대 3선 의원을 지냈고, 신한국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을 두루 역임했다.

2006년 민선 4기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자 반발하며 지사직에서 사퇴했다. 이를 계기로 ‘뚝심’ 있는 충청권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시절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주요 입법을 지휘했다.

원내대표 시절 합리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여야 협치를 이끌어 낸 원내사령탑이란 평가와 함께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온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제정도 이때 이뤄졌다.

2015년 2월 총리직에 올랐다. 청문회 당시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사무관 시절부터 따로 모아둔 해명 자료를 즉각 제시하며 ‘해명 자판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새누리당 동료이자 충청 지역 기업가 출신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며 남긴 로비 목록인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70일 만에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 전 총리는 한때 ‘포스트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까지 불리며 충청대망론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무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정치 활동을 재개하지 못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 주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하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유족으로 부인 이백연씨와 아들 병현·병인씨가 있다. 빈소는 서 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6일, 장지는 청양 비봉면 양사리 선영.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2021-10-1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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