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식들에게 짐 될까 봐, 가까이 모셔 자주 보려고… 파묘 ‘결단’하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단독] 자식들에게 짐 될까 봐, 가까이 모셔 자주 보려고… 파묘 ‘결단’하다[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한지은 기자
한지은 기자
입력 2023-09-25 00:28
수정 2023-09-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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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파묘, 그 이후
그들은 왜
부모 묘지를 파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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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업자 김왕기(62)씨가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의 한 야산에서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장묘업자 김왕기(62)씨가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의 한 야산에서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막상 없어진다니까 영 섭섭하데. 영원한 이별이라는 생각도 들고….”

할아버지 산소에서 개토제(땅을 파기 전 지내는 제사)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 박영식(69)씨는 울컥하는 마음을 들킬까 싶어 함께 온 맏조카를 먼저 보냈다. 40년 넘게 고인을 추모하던 장소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매년 추석과 한식이면 정성스레 조상의 묘지를 돌보던 박씨는 “지금 어른들이 묘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아들이나 조카들에게 큰 짐이 될 것 같아 파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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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예원
그래픽 김예원
지난 3월 박씨는 경남 김해 추모공원에 있던 조부와 부모의 산소를 없앴다. 유골은 공원에 있는 유택동산에서 산골(화장한 유골을 뿌리는 일)했다. 박씨는 “언젠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갈 텐데 봉안당에 모시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파묘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예순이 넘으면서부터다. 벌초가 힘에 부칠 무렵 ‘다음 세대부터는 묘지 관리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들과 어린 질손(조카의 자식)들이 자신처럼 묘지 관리를 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가족끼리 의논하던 중 장손인 형이 세상을 떠나자 고민은 결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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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조부와 부모의 묘를 없앤 박영식(69·맨 오른쪽)씨가 작년 김해 추모공원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성묘하는 모습. 오는 추석은 박씨가 파묘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사진 본인 제공
지난 3월 조부와 부모의 묘를 없앤 박영식(69·맨 오른쪽)씨가 작년 김해 추모공원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성묘하는 모습. 오는 추석은 박씨가 파묘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사진 본인 제공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묘지를 개장했다고 하니 “묘를 파는 건 조심해야 한다던데…”,“좀 빠르지 않냐”, “일단 자식 세대까지 넘기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박씨는 “결단을 내리더라도 우리 세대에서 하는 게 맞다. 옳다고 생각한 일이니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다가오는 추석은 박씨가 파묘한 뒤 처음 맞는 명절이다. 늘 해 오던 성묘 대신 큰집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박씨는 “성묘를 가면 가족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계기도 됐는데 그걸 못 하니 섭섭하다”면서 “이제 그냥 마음으로만 추모하는 거지”라며 웃었다.

“우리 세대서 정리하고 싶었다”

미혼 아들과 조카가 관리할지 의문
40년 지킨 슬픔 삼키고 산에 뿌려
이젠 추석 성묘 대신 마음으로 추모

유언대로 부모 화장해 밭 한쪽 안치
농작물 심어 가족과 月1~2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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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장난영(50)씨는 아버지의 무덤을 개장한 자리에 부모님의 유골을 합동 안치했다. 고향인 경북 예천에 있는 밭에 부모님의 봉안묘를 만든 장씨는 주변에 농작물을 심어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사진 본인 제공
지난해 12월 장난영(50)씨는 아버지의 무덤을 개장한 자리에 부모님의 유골을 합동 안치했다. 고향인 경북 예천에 있는 밭에 부모님의 봉안묘를 만든 장씨는 주변에 농작물을 심어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사진 본인 제공
경기 하남에 사는 장난영(50)씨는 지난해 어머니의 임종에 맞춰 경북 예천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개장했다. 요관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는 장씨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해 산에 뿌려 달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18년 전 떠난 남편의 묘지도 개장해 정리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차를 타도 2시간 반 넘게 걸리는 곳에 사는 자손들이 묘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장씨 가족은 고민 끝에 어머니의 뜻대로 개장을 결심했다. “제사도 없어지는 추세에 후손들이 묘지 관리를 맡을 리가 없으니 우리 세대에서 정리하고 싶었어요.”

장씨는 부모님의 유골을 화장해 고향 밭 한쪽에 묻었다. 옆에는 땅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었다. 그 덕에 장씨는 가족과 함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봉안묘를 방문한다. 봉분이 없으니 풀이 잘 자라지 않아 관리에 대한 부담은 적다. 장씨는 “당장은 서운한 마음에 돌을 올려 자리를 표시했지만 나중에 돌을 걷어 내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이제 돌만 치우면 되는 일이라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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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무덤을 파묘 후 부모님의 봉안묘를 만든 장난영(50)씨가 지난 10일 경북 예천에 있는 밭에 있는 봉안묘에 가족들과 방문한 모습. 이날 장씨네 가족은 봉안묘 주변에 난 풀을 정리하고 밭에 심은 농작물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본인 제공
아버지의 무덤을 파묘 후 부모님의 봉안묘를 만든 장난영(50)씨가 지난 10일 경북 예천에 있는 밭에 있는 봉안묘에 가족들과 방문한 모습. 이날 장씨네 가족은 봉안묘 주변에 난 풀을 정리하고 밭에 심은 농작물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본인 제공
멀리 있는 조상을 더 자주 찾아뵙기 위해 파묘하는 경우도 있다. 조한아(가명)씨는 지난해 충북 괴산 선산에 있던 어머니의 묘지를 개장해 대전 추모공원 봉안당에 옮겨 모셨다. 2008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지가 멀리 있다 보니 자주 찾지 못하고 방치하는 듯해 죄송한 마음이 커서다.

2021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마음 때문에 부친을 봉안당에 모셨다. 조씨는 “아버지는 내심 선산으로 갔으면 하셨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모셔야 자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삼남매가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상들의 묘가 있는 고향 선산은 남자들이 명절마다 벌초를 하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행업체를 쓰는 등 직접 관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씨는 어머니의 유골을 아버지가 계신 봉안당에 합동 안치했다. 하지만 봉안당도 영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씨는 “봉안당 관리 기간이 통상 20~30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세대 자식들도 나이 들고서는 챙기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묘를 없애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방치하느니 가까운 곳으로”

선산 묻히면 벌초·관리도 힘들어
불교 봉안당 모셔 절 갈 때마다 봬
20~30년 뒤엔 묘도 없애는 게 맞아

개장 유골 화장 10년 새 53% 증가
“다음 세대 부담 될라, 당분간 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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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39)씨는 지난 3월 진주에 있던 시할머니의 묘지를 개장 후 경남 양산 소재의 불교 봉안당에 안치했다. 사진 본인 제공
김정아(39)씨는 지난 3월 진주에 있던 시할머니의 묘지를 개장 후 경남 양산 소재의 불교 봉안당에 안치했다. 사진 본인 제공
부산에 사는 김정아(39)씨는 경남 진주의 한 공원묘지에 있던 시할머니의 묘지를 올해 개장했다. 지난 3월 돌아가신 김씨 아버지의 유골을 불교 봉안당에 안치했는데 장례 절차를 지켜본 시부모님이 시할머니의 묘지를 개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진주까지 차로 한 시간 반 남짓 걸려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관리하기도 힘들어서다. 결국 시할머니의 유골은 경남 양산에 있는 불교 봉안당에 안치됐다. 개장 절차를 알아본 건 김씨 부부였지만 결정한 건 윗세대인 시부모였다. 김씨는 “부처님오신날이나 절에 갈 일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가서 인사드릴 수 있으니 가족 입장에서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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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예원
그래픽 김예원
최근 들어 묘지를 개장하는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2011년 4만 4328건에서 2021년 6만 7721건으로 10년 사이 52.8% 증가했다. 윤달이 있었던 2020년에는 13만 9841건에 달하기도 했다. 올해도 윤달이 포함된 해라 수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철영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겸임교수는 “조상의 묘지를 돌보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믿고 감당하던 세대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관리가 불가능해지자 묘지를 하나둘씩 정리하는 것”이라며 “다음 세대에 부담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개장 움직임은 당분간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초빙교수는 “묘지 개장 수요가 몰리는 윤달에만 할 필요는 없다”며 “윤달이 아닌 때에 개장이나 이장을 하면 화장장 예약도 쉽고 가격도 저렴한 등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QR 찍으면 유튜브로<br>

서울신문의 ‘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 기사는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b2AsRnT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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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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