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빛낸 여성 사업가 25인’에 선정된 정명렬 사장
“‘내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정명렬(64) 씨는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동포 경제인으로 꼽힌다. 독일 북동쪽 폴란드와의 국경선 근처에서 풍차가 있는 호텔 ‘포메른밀러’를 경영하고 있다.
독일에서 4번째로 큰 주(州)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위커문데 시에 있는 이 호텔은 1997년 4월1일 개장 이래 지금까지 손님들이 흔적을 남기고 간 방명록이 286쪽짜리 15권이나 될 정도로 유명하다.
3층 건물에 객실 42개, 고급 레스토랑, 세미나실, 사우나실, 마사지실, 볼링장,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네덜란드식 커다란 풍차가 호텔 정문에 세워져 ‘풍차호텔’로 불린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명소가 된 이 호텔을 경영하며 연간 1억 유로(한화 약 1천432억9천3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정 사장은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가 위커문데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이고 독일에서도 여성 경제인으로는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걸어 다니는 한국인’, ‘움직이는 한국 홍보대사’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행동거지를 똑바로 하고 모범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9일부터 충남 예산군 덕산 리솜스파캐슬에서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제8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정 사장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총리로부터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경제상’을 받았고 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한민족여성재단으로부터 ‘세계를 빛낸 여성 사업가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성공은 강한 책임감과 추진력에서 비롯됐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그는 2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가난에 찌든 오빠 언니와 부모를 돕겠다는 책임감으로 파독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간호보조학원을 나와 서울 을지로 메디컬센터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집안을 일으켜 보자는 각오로 1970년 1월 29일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르반 크랑켄하우스(시립종합병원)에서 일했어요. 3년만 일하고 귀국하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러나 1977년 목공소에서 일하는 성실한 남편을 만나 독일에 눌러앉았어요. 아이 낳고 기르면서 반나절씩 근무한 적은 있어도 20년간 한 번도 결근하지 않고 간호사 일을 했어요.”
가정과 일밖에 모르며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가 호텔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시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시아버지가 고향인 위커문데 시에 2만1천평의 땅을 사서 별장을 짓고 낙향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계획을 변경해 제게 ‘호텔을 지어줄 테니 한번 경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경험도 없고 해서 못 하겠다고 거절을 했죠. 시아버지는 계속 권유를 했고 저는 마지못해 승낙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하는 성격인 그는 3년 동안 호텔을 지었다. 원래 풍차가 돌아가던 방앗간 자리에 호텔을 세운 것이다. 문을 열고부터 지금까지 정 사장은 ‘손님을 가족같이 모신다’는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다.
”누구든 한번 들르면 반드시 다음에 또 오게 만들었어요. 유명 연예인, 정치인, 경제인 등이 소문을 듣고 줄줄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럴수록 저는 자만하지 않고 더 철저히 ‘고객 만족’을 실천했어요.”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줄을 잇자 정 사장은 독일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한국 전통문화 공연을 1시간 정도 손님들에게 선보였고, 인기를 얻자 공연 시간을 늘리는 것은 물론 불고기, 김치, 나물, 잡채 등 한국 음식도 제공했다.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한국 문화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호텔 앞 게양대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 놓는다. 올해는 다음달 3일 행사가 열린다.
자신이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그는 바쁜 틈을 내 매년 국제녹색주간 박람회에 참가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를 홍보한다. 10년 넘게 주제에 따라 바뀌는, 화려하고 개성 있는 복장으로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그가 쓰고 다니는 모자 위에는 숲 속의 짐승들, 학, 자전거 등이 올려지며 거기에 빠지지 않고 풍차의 모습도 들어 있다. 박람회 기간에 무게가 4kg이 넘는 모자를 하루 8시간씩 쓰고 다니며 지역광고를 한다.
”힘이 들어도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요. 우리 지역이 잘살게 되는 일이고, 한국도 알리는 일이잖아요. 무척 즐겁습니다. 독일 신문들은 저를 ‘걸어 다니는 홍보대사’로 부르고 있어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공식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그는 암 환우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 후원하고, 내년부터는 남북통일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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