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직접증거 없어도 간접증거로 유죄판결 가능”
인천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한 20대 여성이 숨진 ‘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 A(31)씨에 대해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이 사건은 간접 증거는 있으나 직접 증거인 시신이 없고 구체적인 범행도구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고 있다.
11일 재판부와 검찰 수사 내용 등에 따르면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남자친구 A씨가 여자친구 B(사건 당시 21세)씨와 함께 인천시내 한 모텔에 들어간 것은 지난 2010년 4월19일 오전 3시께였다.
A씨는 투숙 직전에 낙지 4마리를 샀으며 2마리는 자르고 2마리는 통째로 가져갔다.
투숙 1시간여가 지난 뒤 A씨는 모텔 종업원에게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말하며 119 신고를 요청했다.
A씨는 여자친구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갔다. B씨는 병원으로 옮긴 지 16일 만에 숨졌다.
그러나 B씨가 사망하기 한달 전쯤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보험금 수령인이 법정상속인에서 남자친구인 A씨로 변경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유족이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여기고 B씨의 시신을 화장한 뒤였다.
남자친구는 보험금 2억원을 받은 뒤 유족과 연락을 끊었다.
유족의 요구에 따라 경찰은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재수사에 나섰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강 수사를 벌여 A씨를 구속했다.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열린 이번 재판의 쟁점은 시신이 화장돼 직접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서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살인죄와 같은 중죄의 경우,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공소사실에 나온 정황 증거를 적극 인용했다.
우선 여자친구 B씨가 모텔에서 심폐기능이 멈춘 채 발견된 것은 호흡곤란과 질식에 의한 것인데, 이 경우 당연히 나타나야 할 몸부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재판부는 주목했다.
피해자가 몸부림을 치지 않았다기 보다는 몸부림이 있었는데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 즉 여자친구를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고 주장하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코와 입을 막는 등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유행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와 입을 막은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타월 등 부드러운 천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밖에도 모텔 종업원 진술, 여자친구를 사망 전까지 진료한 의사 진술, 남자친구가 사건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지인들의 진술을 적극적으로 살폈다.
또 신용불량자인 남자친구가 주변에 돈을 빌리는 등 금전적으로 궁핍한 형편에 있는데도 과다 소비를 한 점에 주목하고 보험금을 노리고 여자친구를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여자친구가 고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남자친구가 모텔 종업원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종업원을 통해 사건을 신고한 점,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 또 다른 만남을 계속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점 등도 유력한 정황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같이 제시된 간접 증거들을 추론과 관찰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필 때 유죄 판결에는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인 B씨가 항소할 경우 항소심 재판 결과 역시 유죄로 나올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0년 부산에서 보험금을 노리고 20대 노숙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화장하고 자신이 사망한 것으로 꾸민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의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이 1심에서는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 판결이 엇갈린 바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살해 동기가 충분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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