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주고 떠난 정진석 추기경…“가난한 사람 돌보고 섬겨라”

모든 것 주고 떠난 정진석 추기경…“가난한 사람 돌보고 섬겨라”

김주연 기자
김주연 기자
입력 2021-04-29 15:51
수정 2021-04-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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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 안치된 고 정진석 추기경의 시신  연합뉴스
명동성당에 안치된 고 정진석 추기경의 시신
연합뉴스
“정진석 추기경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충북 음성 꽃동네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의무원장인 신상현(66) 수사는 29일 서울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 수사는 지난 27일 선종한 정 추기경을 “꽃동네의 큰 은인”이라며 “자신은 바지 하나를 20년 가까이 입으며 아껴쓰고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삶을 실천했다”고 떠올렸다.

오웅진 신부가 1976년 최귀동 할아버지와 노숙인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꽃동네를 처음 만들었을 때 주민들은 물론 신도들까지 탐탁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청주교구장이었던 정 추기경은 “사람이 하는 일이면 저절로 없어지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면 잘 될 것이니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보자”며 꽃동네 사람들에게 힘을 실었다.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꽃동네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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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진석 추기경과 충북 음성 꽃동네
고 정진석 추기경과 충북 음성 꽃동네 2006년 정진석(오른쪽) 추기경이 충북 음성 꽃동네에 안장된 어머니의 산소 인근에서 열린 10주기 추모미사에서 꽃동네 가족들을 축복하고 있다.
음성 꽃동네 제공
꽃동네에는 정 추기경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그는 꽃동네대학교를 세울 자금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쓴 책의 인지세를 기부했다. 2017년 무연고자들을 위해 만든 꽃동네 봉안당도 그의 이름을 따 ‘추기경 정진석 센터’로 지었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임종을 준비하면서 2000만원을 꽃동네에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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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을 추모하는 충북 음성 꽃동네
정진석 추기경을 추모하는 충북 음성 꽃동네 29일 충북 음성 꽃동네의 예수성심성당에 지난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을 추모하는 빈소가 마련돼있다.
신상현 수사 제공
신 수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느라 추모가 어려워져 수도자들이나 봉사자들, 가족(환자)들 모두 아쉬워한다”고 전했다. 꽃동네 사람들은 대신 방송으로 중계되는 미사를 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날도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적힌 현수막과 정 추기경의 영정 사진이 놓인 꽃동네 예수성심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진행됐다.

정 추기경 어머니 고 이복순 여사의 주치의였던 신 수사는 모자의 사랑과 희생을 곁에서 배웠다. 이 여사는 “나는 하느님께서 돌봐주실 테니 사제의 길을 가라”며 외아들인 정 추기경을 신학교로 떠나보내고 홀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다. 신 수사는 “여사께서 어린 정 추기경에게 신발을 사주면 어머니가 사준 신발이라며 신지 않고 품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면서 “추기경님께서 하루 세 번 어머니의 약을 직접 챙겼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1996년 안구를 기증하고 꽃동네 성모상에 안장된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영면했다. 그의 각막은 실험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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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명을 출판한 고 정진석 추기경
위대한 사명을 출판한 고 정진석 추기경 정진석(왼쪽) 니콜라오 추기경이 지난 27일 선종했다. 사진은 충북 음성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신상현 의무원장이 2019년 12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추기경 사무실에서 정 추기경이 집필한 ‘위대한 사명’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신 수사 제공
신 수사는 “추기경님께서는 병상에서도 ‘꽃동네가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동네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면서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사익과 쾌락을 좇는 우리 사회가 추기경님이 남긴 메시지를 되새기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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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내외, 정진석 추기경 빈소 조문
문 대통령 내외, 정진석 추기경 빈소 조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마련된 고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를 찾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의 안내를 받으며 조문하고 있다. 2021.4.29 연합뉴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이날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마련된 정 추기경의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조문을 마친 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에게 “어려운 때 교회와 사회의 큰 어른이 선종한 것이 안타깝다”면서 “진정한 행복의 삶, 청빈의 삶이라는 좋은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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