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달인’vs‘노련 정치가’…한미 FTA 대결의 끝은?

‘협상 달인’vs‘노련 정치가’…한미 FTA 대결의 끝은?

입력 2010-11-08 00:00
업데이트 2010-11-0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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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FTA 최종담판 나선 김종훈- 론 커크

 정통 관료 출신인 ‘협상의 달인’과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조정의 대가’가 8일 공식적인 협상테이블에 다시 마주 앉았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이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쟁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댄 것이다.

 지난달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미 FTA 문제와 관련,처음 통상장관 회의를 가진 지 2주일 만이다.

 두 사람의 FTA 협상 장면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 양국에서 통상문제를 총괄하는 두 사람의 지나온 길을 비교해보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체결된 지 3년이 지나도록 양국에서 비준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는 한미 FTA 협정문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아직은 ‘동상이몽’인 부분이 더 많아 보여 적잖은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창’에 비유되는 커크 대표는 올해 56세로 정치인 출신이다.

 그는 18살 때인 지난 1972년 당시 조지 맥거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했을 정도로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었다.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커크 대표는 1994년 텍사스주 국무장관을 역임했고,1995년 미국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인 댈러스 시장직에 도전,기업인들과 흑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댈러스에서 첫 흑인시장에 당선된 뒤 두 차례 시장을 지냈다.

 그는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대표적인 자유무역 옹호론자로 꼽힌다.댈러스 시장 시절 민주당 내부에서 반대기류가 압도적이었음에도 댈러스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정도로 무역을 중시한다.

 그럼에도 그는 한미 FTA에 대해선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왔다.

 그는 2009년 3월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한미 FTA에 대해 “현 상태로는 수용할 수 없다”며 수정.보완 필요성을 역설했고,“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여기(한미 FTA)에서 물러설 용의도 있다”고 밝힐 정도로 강성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방패’로 나선 김 본부장은 이와 대조적으로 직업관료 출신이다.

 커크 대표보다 2살이 많은 김 본부장은 지난 1974년 외무고시 8회에 합격,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주미 참사관,주 제네바 공사,지역통상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6년 한미 FTA 협상에 한국 측 수석대표로 나서 웬디 커틀러 USTR 대표보와 협상을 벌였고,2007년 6월30일엔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한미 FTA 협정문에 서명했다.

 김 본부장으로선 자신이 서명한 한미 FTA 내용을 3년여 만에 자기 손으로 고쳐야 하는 ‘묘한 숙명’에 직면해 있다.

 그는 한미 FTA 협정의 산파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최근 몇 년간 체결한 EU(유럽연합)와의 FTA,인도와 FTA격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등을 주도했다.

 현재 한국이 추진 중인 중국,호주 등과의 FTA도 모두 김 본부장의 손때가 묻은 것이어서 그는 한국은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FTA 협상의 달인’으로 통한다.

 ‘창’과 ‘방패’로 만난 ‘노련한 정치가’와 ‘협상의 달인’이 한미 간 이익의 충돌을 넘어서 윈-윈의 협상결과를 이끌어 냄으로써 한미 두 나라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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