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수용 못해”…통계청·심평원은 서로 남 탓
‘만성폐쇄성폐질환(COPD)’과 ‘만성폐색성폐질환(COPD)’, ‘전립샘암’과 ‘전립선암’ 중 어떤 게 옳은 병명일까?통계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이나 전문의들로부터 여론도 수렴하지 않은 채 임의로 일부 병명(한국표준질병)을 바꿔놓아 말썽을 빚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30일 기관지나 폐에 염증이 생기고 폐 조직이 파괴되면서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생기는 ‘만성폐색성폐질환’ 환자가 크게 줄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OECD 흡연율 7위의 나라에서 관련 질환이 줄었다는 이 분석은 분명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COPD 관련 전문의들도 모르게 그동안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불리던 질환명이 ‘만성폐색성폐질환’으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의료계는 전문가들의 여론 수렴 없는 의학용어를 쓸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오연목 교수는 “의학용어라는 것이 처음에는 누군가 작명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유지해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면서 “만약 특별히 하자가 있어서 바꿔야 했다면 그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 특히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이어 “병명 변경 사실을 처음 듣는 데다 의학용어를 편의적으로 바꾸는 것에 납득하기 어렵고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통계청이 올해 1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새롭게 고시하면서 일부 병명을 바꿨기 때문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이 만성폐색성폐질환으로, 전립샘이 전립선으로 각각 바뀐 게 대표적이다. 전립선의 경우 지난 2003년 전립샘이 됐다가 다시 전립선으로 환원됐다.
통계청에서 정하는 질병명이 중요한 것은 질병명이 변경되면 보건당국이나 각 의료기관에서도 상병코드에 쓰는 질병명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심평원 관계자는 “질병명 변경은 통계청 고유의 권한으로, 통계청이 올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개정하면서 일부 질병명을 바꿨다고 통보해와 이를 적용했을 뿐”이라며 통계청에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통계청은 “실제 질환에 좀 더 가까운 병명을 쓰자는 취지로 병명을 바꾼 것으로, 병명을 바꾸기 전에 심평원과 6개월 정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이를 반영했다”며 심평원 주장을 반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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