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무기 금융상품’ 한국이 세계 1위 시장

‘대량살상무기 금융상품’ 한국이 세계 1위 시장

입력 2011-11-15 00:00
수정 2011-11-1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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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 장세서 한탕 노린 투기성 자금 급증 탓9ㆍ11테러 후 증시 공포가 韓파생시장 급팽창 촉발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2003년 금융 파생상품을 ‘대량 살상무기(WMD)’와 같다고 비판했다. 5년 뒤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는 이 상품의 위험성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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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성이 짙은 파생상품 거래는 대규모 손실을 감추고 있다가 일시에 드러낸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고 경제가 후퇴한다는 게 버핏의 경고다.

파생상품 시장은 위험 회피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현물시장을 압도할 만큼 기형적으로 급팽창해 각종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파생상품시장 ‘세계 최대’로 급팽창

국내에서 파생상품이 거래된 것은 1995년부터다. 이후 빠르게 성장해 불과 15년 만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세계 최대 시장이 됐다.

15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파생상품 시장 거래대금 예상치는 3경350조원에 달한다.

이는 코스피200 옵션과 선물, 미국 달러선물, 국채선물,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장내 파생상품뿐만 아니라 주식, 이자율, 통화, 신용 등과 연계된 장외 파생상품을 모두 포함한 거래대금이다.

국내 장내·외 파생상품 거래대금은 한 해도 쉬지 않고 증가했다. 2006년 1경480조2천억원으로 1경원을 처음 넘겼고, 2008년에는 2경1천147조8천억원으로 2경원을 돌파했다.

특히 장내 파생상품시장 규모는 매우 큰 편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장내 파생상품시장 거래대금 합계는 1경4천266조1천억원이다. 같은 기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총 거래대금인 1천908조4천억원에 비해 7.5배나 된다.

세계 주요 자본시장과 비교해도 양적인 면에서 월등하다.

지난해 한국거래소의 파생상품 거래량은 37억5천200만계약으로 전 세계 거래량의 16.8%를 차지했다. 2위인 독일 파생상품 거래량 18억9천700만계약(8.5%)의 2배에 육박한다.

코스피200 옵션시장은 세계 주가지수 옵션시장에서 차지하는 거래량 비중이 69.0%나 됐다. 2위인 인도증권거래소(10.4%)의 7배에 이른다.

한국거래소의 시가총액이 1천95조1천억원(9월말 기준)으로 세계 17위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생상품시장은 헤지 기능을 넘어서 과도하게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기형적으로 거대한 파생상품시장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몰려 막대한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개인은 외국인이나 기관보다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장내 파생상품시장에서 개인의 거래비중은 32.3%로 외국인(31.5%)보다 높았고 기관(32.3%)과 비슷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옵션과 ELW 시장에서 국내 개인들은 외국인보다 경쟁력이 매우 떨어진다. 초단타매매를 하는 일부 개인들(스캘퍼)도 있어 소액을 투자하는 개인들은 먹잇감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증시 공포가 한국 파생시장 급팽창 계기

장내 파생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 원인으로 2001년에 터진 9·11테러가 꼽힌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주가가 폭락해 대부분 투자자가 공포에 떠는 동안 선물과 옵션 거래로 대박을 내는 투자자가 등장하자 파생시장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당시 풋옵션을 매수한 일부 투자자는 하루 만에 504배의 기록적인 수익률을 남기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옵션거래가 폭증했다. 2001년 옵션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전년보다 4배 이상 늘어났다.

2008년 9월에 불거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도 파생시장 거래를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리먼이 파산보호 신청을 한 다음날 옵션 가격은 최고 130배 급등했다.

그해 연초 월 10조원대로 잠시 주춤했던 옵션 거래가 리먼 사태가 터진 9월에는 30조원대로 다시 팽창했다. 그 다음달에는 무려 44조원이 거래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월 44조원이라는 최대 거래 기록은 지난 8월까지 3년 가까이 유지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위원은 “개인의 참여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장내 파생상품시장이 커졌다. 파생시장내 개인 투자자의 상당수가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노리고 들어온 것이어서 리스크가 과도하게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내 파생시장과 비교해 장외시장의 성장 속도는 2009년 이후 한풀 꺾인 것으로 평가된다.

장외파생 거품에서 촉발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억제 정책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달러 유출입을 차단하고자 선물환 규제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였다. 이에 따라 국내 장외거래의 70% 비중을 차지하는 통화선도·스와프 등 통화 관련 거래가 위축됐다.

통화 관련 장외파생 거래는 2006년 3천749조에서 2008년 9천595조원으로 급증했으나 2009년에 전년대비 5.1%(1경82조), 2010년에는 1.0%(1경180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신용파생상품은 거의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신용파생의 대표 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는 2008년 6조4천억원에서 2009년 5조3천억원, 2010년에는 3조6천억원으로 매년 급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4조원으로 작년 전체보다 거래대금이 늘었으나 은행권의 참여가 줄어 시장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금융투자협회 이석형 장외파생상품팀장은 “수출이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장외 파생상품 거래가 자연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부의 외환 규제로 통화선도 거래가 줄어든 데다 부동산 담보대출 규모 축소로 이자율 스와프 증가세가 둔화한 것이 장외시장 전반의 위축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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