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정보보호ㆍ효율성 목적” vs 업계 “정보집중 위험천만”
20여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보험 정보 일원화를 놓고 금융당국과 업계가 충돌하면서 대혼란을 겪고 있다.금융노조까지 금융당국이 ‘보험판 빅브라더’ 탄생을 조장한다며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20일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1일 공청회를 열고 보험정보 일원화와 관련해 보험 업계와 학계,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듣는다. 공청회에서 제시된 내용을 기반으로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금융위는 보험개발원을 보험정보원으로 개편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해 왔다. 보험정보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개인정보 유출을 차단하려면 보험정보를 한곳에 모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보험사기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생명보험협회는 2007년 계약ㆍ사고 정보를 모두 담은 시스템을 구축했고, 손해보험협회는 마련 중이다.
그러나 여러 개 보험에 가입한 다음 고의로 사고를 내는 사기수법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생ㆍ손보 계약정보와 사고기록을 아우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당국의 견해다.
보험정보원이 만들어지면 생명보험, 손해보험, 공제사업의 실손보험 정보를 모아 관리하고 건강보험관리공단과 심사평가원 등 공적 보험 기관과의 협조 창구를 맡게 된다.
생ㆍ손보협회는 이들 정보의 수집ㆍ관리 기능을 보험정보원에 넘겨줘야 한다. 현재 협회가 보유한 보험정보는 약 2억3천건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이번 공청회를 끝으로 보험정보원 설립을 기정사실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정보원 설립에 관한 계획은 세워진 상태”라며 “공청회는 당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반대 의견을 한 번 더 들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보험정보 집적은 보험사기 방지와 개인정보 유출 차단, 운용과 비용의 효율성 제고를 차원에서 마련된 정책”이라며 “공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ㆍ손보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보험에 가입한 상황에서 개인 정보를 1곳에 집적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시간을 두고 충분하게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에는 엄청나게 자세한 개인 정보가 들어 있는데 이 모든 걸 보험정보원을 만들어 모으겠다는 발상 자체가 옳지 않다”면서 “생보협회와 손보협회, 보험개발원이 별도로 운영했을 때도 문제가 없었고 서로 협조도 잘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보사 관계자는 “개인정보 집적처럼 중요한 문제는 금융당국이 요식행위 같은 공청회 한번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면서 “업계 등 관계 기간의 의견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사무금융노조도 보험정보원 설립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금융 당국이 관리감독의 편의성만 추구하며 보험개발원에만 힘을 실어주는 특혜성 정책을 편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보험정보는 대다수 국민의 개인정보와 신용정보가 포함돼 있어 효율성만으로 정보의 집적과 집중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하다”면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은 물론 공제조합의 정보까지 한곳에 모으고 나아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정보까지 확대 연결하겠다는 주장은 보험판 빅브라더를 출현시키려 한다는 판단이 들게 한다”고 비난했다.
보험정보 집적 문제는 1990년대부터 문제가 됐지만, 생ㆍ손보협회와 보험개발원의 갈등이 끊이지 않아 번번이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보험업계에선 ‘정보가 곧 힘’인데 생보협회와 손보협회의 개인 정보가 통째로 보험개발원에 넘어가면 협회 존립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