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株 결정타…한국 주식시장만 부진
국제적 부러움을 받았던 한국 경제가 ‘환율 덫’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다.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엔화 약세, 원화 강세의 ‘태풍권’에 들어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이는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동안 코스피 상승을 책임졌던 양대 업종인 자동차와 전기전자(IT)가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에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지수를 끌어올릴 동력이 사라졌다.
특히 자동차 업종은 예상보다 원화강세 속도가 빨라 현대ㆍ기아차가 환 헤지 대응에 실패하면서 실적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밖에 환율 문제가 수출기업 실적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의 전략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한국 주식시장에서 수출주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주가흐름을 보이고 있다.
◇ 車, 원화강세 ‘직격탄’…”하락폭보다 속도가 문제”
지난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작년 연간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작년 4분기 실적은 좋지 않았다.
기아자동차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의 반 토막이었다. 영업이익은 4천42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1.1% 감소했다. 매출액도 11조2천770억원으로 2.9%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대자동차의 지난 4분기 실적도 부진했다. 판매량 122만6천847대, 매출액 22조7천190억원, 영업이익 1조8천319억원 등에 머물렀다. 영업이익은 2011년 4분기, 작년 3분기보다도 감소했다.
작년 4분기 실적 부진의 원인은 환율이었다. 원화 강세와 더불어 작년 연말부터 계속한 엔화 약세가 실적에 부담을 줬다.
증시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는 직접적으로, 엔화약세는 간접적으로 각각 국내 자동차 기업들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진단했다.
하이투자증권 고태봉 팀장은 “원ㆍ달러 환율하락 탓에 작년 4분기 기준으로 기아차가 1.7%, 현대차가 1%가량 영업이익이 감소해 두 회사 모두 약 2천억원씩 손해를 봤을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ㆍ기아차의 실적이 원화 강세에 타격을 입은 주요 원인은 원ㆍ달러 환율의 하락폭보다 속도에 있다.
전문가들은 환 헤지(회피)를 통해 환 리스크를 완화하기에는 원화 강세 속도가 너무 빨랐다고 분석했다.
현대증권 채희근 팀장은 “환율은 사전에 예측하기 가장 어려운 거시지표 중 하나”라면서 “특히 작년 4분기에는 환 헤지로 대응하기에는 하락 속도가 너무 빨랐다”고 설명했다.
엔화 약세는 원화 강세처럼 국내 자동차 기업의 실적에 직접적 타격을 주는 요인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엔화 약세가 지속하면서 일본 자동차 업종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김연찬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본격화한 작년 11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일본 자동차 주식에 대한 매력도가 증가하면서 관련 종목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기간 도요타는 36.6%, 혼다는 41.6%, 닛산은 25.9%의 비율로 주가가 상승했다.
◇ 환율 악재에 수출株 압박…코스피 상승동력 ‘부재’
그동안 코스피 상승을 견인해온 양대 업종 중 운수장비가 삐걱거리자 한국의 주식시장이 ‘나홀로 부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대외적으로 경제지표가 개선하면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주식시장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유가증권시장은 글로벌 경기회복으로부터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연초부터 뱅가드 벤치마크 변경 이슈, 외국인 수요 부진, 국내기업 4분기 실적 부진 등 악재가 겹친 탓이다.
문제는 국내 주식시장의 양대 업종 중 나머지 한 축인 IT마저 환율 악재에 시달리면서 코스피의 상승을 견인할 업종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투자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작년 7월 말 이후 최근까지 증가한 코스피 시가총액 중 IT가 차지하는 비율은 50%에 가까웠다”면서 “IT가 전체 업종 중 코스피 상승 기여도가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애플의 실적 부진과 더불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는 원ㆍ달러 환율에 대한 경계감이 생기면서 IT가 오히려 코스피의 반등탄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환율문제가 외국인의 투자전략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 주식시장에서 수출주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 곽병열 연구원은 “최근 엔화약세를 계기로 외국인들이 한국과 대만 주식시장에서는 수출주 매도 전략을, 일본에서는 매수 전략을 펴고 있다”면서 외국인 매수 위축의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증권 곽중보 연구원도 “최근 일본은행(BOJ)의 정책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당국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주식시장에서 시총 상위 종목인 대표적 수출주들의 강세가 제한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