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너무’를 너무 잘못 표현하는 시대/민경호 세계로미디어 출판사 대표

[기고] ‘너무’를 너무 잘못 표현하는 시대/민경호 세계로미디어 출판사 대표

입력 2010-07-15 00:00
수정 201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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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난해한 상황 또는 심리 묘사까지도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나 이웃으로부터 언어를 배웠고 언어와 함께 성장하고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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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호 세계로미디어 출판사 대표
민경호 세계로미디어 출판사 대표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한 가지 잘못된 표현을 너도 나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젠 그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너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 이다. 결국 ‘너무’라는 표현은 긍정이 아닌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무 곳에나 붙여서 사용하는 습관을 키워왔다. ‘너무 맛있다.’, ‘너무 행복하다.’, ‘너무 즐겁다.’ 등등 듣기조차 거북한 이런 표현들을 우리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때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맛있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맛있어서 맛이 없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너무 행복하다.’는 표현은 ‘너무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니 빨리 불행이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라도 교정할 여지가 있다고 하겠으나, 다문화 가정의 경우라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말을 배우는데 한국 사람들이 잘못된 표현을 마구 사용한다면, 그들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언어도 탄생해서 자라고 소멸해 가는 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의미를 훼손해 버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때는 교육이나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말에는 얼과 혼이 배어 있다.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아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얼도 언어와 함께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말 것이다.

‘너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분명 심리적이고 내재적인 동기가 있을 것이다. 과장하지 않으면 시선을 끌 수 없을 것 같고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 한 것은 아닐까? 자신을 과대 포장해서라도 타인에게 드러내놓아야 더 주목받을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시대적 흐름이 우리를 더욱 과도하게 몰아붙이고 그것이 우리를 더욱 숨 막히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사람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출판인의 한 사람으로서 잘못된 표현을 지적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문제의 원인은 잘못된 습관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근원적인 심리적 압박감에서부터 나온 방어 행동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왠지 씁쓸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현대인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시간에 쫓기며, 왜 초조하게 살아야 하며, 왜 과도하게 자신을 포장해야만 하는가?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우리의 얼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현재 잘못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2010-07-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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