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동문학가인 저희 아버지 윤석중(1911~2003) 선생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해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고향 논란’이 불거져 유족들이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2008년 간행된 노경수 박사(단국대)의 논문 등을 보면 ‘(윤 선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서산을 등지게 되었고 그 아픔 때문에 서산과 연계되는 것을 싫어하였다.’라고 돼 있다. 지역 언론도 “윤석중이 서울 출생이지만 1930년대부터 50년대 초반까지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에 살았고, 서울로 이주하고 나서도 서산을 그리워한 작품을 많이 썼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산에 사신 적이 없다. 1934년 12월 할아버지가 서산 타향살이를 시작하였을 때, 아버지는 24세 청년으로 이미 서울 문단에서 명성이 높았다. 석 달 후에는 어머니와 결혼하셨고, 서울에 계속 거주하였다. 따라서 서산은 아버지의 고향이 아니다. ‘정신적 고향’도 될 수 없다. 아버지가 평생 고향을 감춘 채 살아온 것처럼 비쳐 유감이다.
윤석중 선생 장남 태원·차남 원
2008년 간행된 노경수 박사(단국대)의 논문 등을 보면 ‘(윤 선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서산을 등지게 되었고 그 아픔 때문에 서산과 연계되는 것을 싫어하였다.’라고 돼 있다. 지역 언론도 “윤석중이 서울 출생이지만 1930년대부터 50년대 초반까지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에 살았고, 서울로 이주하고 나서도 서산을 그리워한 작품을 많이 썼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산에 사신 적이 없다. 1934년 12월 할아버지가 서산 타향살이를 시작하였을 때, 아버지는 24세 청년으로 이미 서울 문단에서 명성이 높았다. 석 달 후에는 어머니와 결혼하셨고, 서울에 계속 거주하였다. 따라서 서산은 아버지의 고향이 아니다. ‘정신적 고향’도 될 수 없다. 아버지가 평생 고향을 감춘 채 살아온 것처럼 비쳐 유감이다.
윤석중 선생 장남 태원·차남 원
2011-06-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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