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위장전입/최용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위장전입/최용규 논설위원

입력 2011-07-19 00:00
수정 2011-07-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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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僞裝轉入)이 고위직 인사의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전 정권 때만 해도 위장전입은 공직자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다. 큰 감투가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이 ‘물건’에 잘못 손을 댄 까닭에 낙마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몹쓸 물건이 고관들을 치장하는 화려한 스펙처럼 돼버렸다. 위장전입자에 대한 단죄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오래됐다. 1983년 10월 21일 ‘강남(江南) 위장전입’이 중앙 일간지 사회면을 온통 장식했다. 서슬퍼런 5공시절이었지만 신흥 명문고에 자식을 넣으려는 부모들 때문에 장안이 발칵 뒤집혔다. 상문고 주변(서초·반포·도곡·잠원동), 영동고 주변(압구정·청담·삼성·학동), 세화여고 주변(반포동)에 합동조사반이 들이닥쳐 위장전입자 219명을 골라냈다. 소속 직장에 명단이 통보돼 인사조치를 당하는 등 사회정화 차원에서 강력 조치됐다.

위장전입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감사원은 투기 붐이 한창이던 1996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용인 수지지구 신규전입자 3만 2992가구에 대한 위장전입 여부를 조사했다. 2713가구가 적발됐고, 주민등록 말소와 더불어 고발조치됐다. 아파트 당첨도 대부분 무효처리됐다. 지난 10여년간 이렇게 위장전입으로 처벌 받은 사람은 50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 주양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장전입 의혹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2년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각각 부동산 투기 의혹 위장전입과 자녀 취학 의혹 위장전입으로 사퇴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그만뒀다.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도 사퇴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현행법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정서상으로 봤을 때도 ‘범죄’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는 위장전입을 ‘사과하면 끝날 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자녀 취학 때문에 다섯번 위장전입했다고 밝혔다. 이후 위장전입은 총리·장관에 오를 수 없는 결격사유에서 제외됐다. 명백한 범죄지만 ‘사소한 흠결’ 정도로 치부됐다. 곽승준, 최시중, 이만의, 현인택, 김준규, 민영일, 정운찬, 이귀남, 임태희, 신재민, 이현동, 조현오 등은 위장전입 때문에 낙마하진 않았다. 지금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도 이 반열에 올라 있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1-07-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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