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경찰의 전화, 이제 반갑지 않다/유영규 온라인뉴스부 기자

[지금&여기] 경찰의 전화, 이제 반갑지 않다/유영규 온라인뉴스부 기자

입력 2011-10-08 00:00
수정 201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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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경찰서 김△△ 형사인데요, 유 기자님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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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규 온라인뉴스부 기자
유영규 온라인뉴스부 기자
다른 어떤 직종보다 경찰을 상대할 일이 잦은 게 기자지만 갑자기 모르는 형사가 나를 찾으면 순간 움찔하곤 한다. 교통신호를 제대로 지켰는데도 순찰차가 접근하면 긴장하게 되는 운전자의 심리와 비슷하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과학수사 시리즈를 지난 4월부터 매주 연재한 이후 경찰 전화를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용건은 대개 비슷하다. 관내 미제(未濟) 사건이 있는데 유형이 기사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신문에 난 사건을 실제 담당했던 형사나 부검의의 자문을 구하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응대한다. 뭔가 사건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찰이 과학수사 전문가 집단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어떤 법치의학자가, 어떤 법곤충학자가, 어떤 DNA 전문가 포진해 있는지는 기자의 수첩이나 기억에 의존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당연히 수사 매뉴얼이 있어야 하고 전문가 풀도 시스템 차원에서 확보돼 있어야 한다. 주요 사건을 해결했던 베테랑 형사들의 알토란 같은 현장 노하우도 체계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실제로 취재를 하다 보면 초기 범죄현장부터 해결 순간까지의 금쪽같은 수사 노하우가 공유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누군가의 오답노트가 또 다른 누군가의 해법노트가 될 수 있다. 정보는 최대한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정리해야 한다. 사건해결에 공이 큰 경찰을 특진시켜 인센티브를 주는 것 못지않게 유능한 형사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 당한 억울한 죽음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록과 공유의 시스템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시신은 진실을 담고 있지만 스스로 말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whoami@seoul.co.kr

2011-10-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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