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박사학위 통과 시험을 치르던 당시의 이야기다. 필자는 학위 취득을 위해 전공서적 30여권을 깨알 같은 글씨로 요약해 가며 빈틈없이 준비했다. 구두시험 현장에서 필자의 논문지도 교수이며 시험 주심이기도 했던 P M 추레너 교수가 던진 질문은 그에 비해 의외로 너무도 파격이었다.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 한 단어로 말해 보시오.”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들의 배후에 작용하는 결정적인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단 한 단어로 말해 보시오.”
“…….”
당황스럽기도 하고 혼돈스럽기도 한 이 질문에 필자는 마치 ‘스무고개’ 풀기를 하듯이 진땀을 빼며 답을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가 답의 언저리에 근접할 때마다 교수님은 보조 질문을 던져주면서 도와주었다. 단 한 번에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하지 못한 필자인지라 의당 교수님의 얼굴을 살필 수밖에 없었지만, 교수님의 표정은 대만족이었다. 어차피 교수님은 정해진 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지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유법의 학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은 오직 제자 스스로가 섭취하고 소화한 초간단 핵심 및 그의 학문적 내공을 점검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교수님의 질문은 시험이 아니라 마지막 강의였던 셈이다. 그 수업의 추억은 필자 인생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되어 오늘도 필자의 가슴에서 고동치고 있다.
“늘 한 단어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라.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인자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물으라.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그렇다.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야말로 으뜸 지혜라 할 것이다. 고로 현상의 표리(表裏), 사안의 경중(輕重), 순서의 선후(先後)를 파악하는 것이 무릇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무수한 곁다리들을 가져다 놓고 이러쿵저러쿵해 봤자 허접할 따름이다. 그 곁다리들을 헤치고 핵심 하나만 분명히 잡으면 어떤 난제건 해결의 실마리가 술술 풀리게 마련 아닌가.
때마침 서울 시정을 지휘할 인물로 과연 누가 적합한지를 놓고 적지 않은 이들이 저울질할 시기다.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 심장부의 운명을 과연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바로 우선순위를 아는 지혜를 갖춘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현상의 표(表), 사안의 경(輕), 순서의 후(後)에 경도되어 휘둘리지 않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정말로 필요한 이(裏), 중(重), 선(先)을 포착하고 수행할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다.
옛날 송나라에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관상가에게 가서 자신이 재상이 될 재목인지 관상 좀 봐 달라고 했다. 관상가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재상이 되지 못할 상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에 범문공이 다시 찾아가서 “그럼 의원(醫員)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의원은 낮은 신분에 속했다고 한다. 이에 관상가가 그에게 “의원은 왜 되려고 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재상이 되고 싶었는데 안 된다고 하니,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돕고 싶어서 의원이 되고자 하오.”
이 말에 관상가는 “당신은 재상이 되겠소” 하고 말했다. 범문공이 어리둥절하여 “아니, 얼마전에는 안 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재상이 된다니 어떻게 된 거요?” 하고 물으니, 관상가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관상이란 색상이 먼저이고, 둘째가 골상이며, 셋째는 심상인데, 당신의 골상이 시원치 않아 재상감은 아니지만 심상을 보니 재상이 되기에 충분하니 그렇소.”
우리에게도 그 심상을 보는 형안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 한 단어로 말해 보시오.”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들의 배후에 작용하는 결정적인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단 한 단어로 말해 보시오.”
“…….”
차동엽 인천 가톨릭대 교수·신부
돌이켜보니 교수님의 질문은 시험이 아니라 마지막 강의였던 셈이다. 그 수업의 추억은 필자 인생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되어 오늘도 필자의 가슴에서 고동치고 있다.
“늘 한 단어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라.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인자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물으라.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그렇다.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야말로 으뜸 지혜라 할 것이다. 고로 현상의 표리(表裏), 사안의 경중(輕重), 순서의 선후(先後)를 파악하는 것이 무릇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무수한 곁다리들을 가져다 놓고 이러쿵저러쿵해 봤자 허접할 따름이다. 그 곁다리들을 헤치고 핵심 하나만 분명히 잡으면 어떤 난제건 해결의 실마리가 술술 풀리게 마련 아닌가.
때마침 서울 시정을 지휘할 인물로 과연 누가 적합한지를 놓고 적지 않은 이들이 저울질할 시기다.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 심장부의 운명을 과연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바로 우선순위를 아는 지혜를 갖춘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현상의 표(表), 사안의 경(輕), 순서의 후(後)에 경도되어 휘둘리지 않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정말로 필요한 이(裏), 중(重), 선(先)을 포착하고 수행할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다.
옛날 송나라에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관상가에게 가서 자신이 재상이 될 재목인지 관상 좀 봐 달라고 했다. 관상가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재상이 되지 못할 상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에 범문공이 다시 찾아가서 “그럼 의원(醫員)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의원은 낮은 신분에 속했다고 한다. 이에 관상가가 그에게 “의원은 왜 되려고 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재상이 되고 싶었는데 안 된다고 하니,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돕고 싶어서 의원이 되고자 하오.”
이 말에 관상가는 “당신은 재상이 되겠소” 하고 말했다. 범문공이 어리둥절하여 “아니, 얼마전에는 안 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재상이 된다니 어떻게 된 거요?” 하고 물으니, 관상가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관상이란 색상이 먼저이고, 둘째가 골상이며, 셋째는 심상인데, 당신의 골상이 시원치 않아 재상감은 아니지만 심상을 보니 재상이 되기에 충분하니 그렇소.”
우리에게도 그 심상을 보는 형안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2011-10-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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