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모두 12명의 전문가가 주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한 이 세미나에서 핵심 논점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부지의 적절성으로, 부지가 유적, 곧 월성 성벽과 해자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건물 유형의 적절성으로, 전통 건물 유형인 한옥이 아닌 현대식 건물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었다.
이 세미나에서 몇 가지 관점이 제시돼 공감을 얻었는데, 모두 역사도시 유적지구의 공공건축에 관한 사회적 합의의 기반이 될 것들이다. 첫째, 문화재보호법에 따라서 문화재 주변에서는 민간의 재산권 행사가 크게 제약되는 현실을 고려해 문화재 주변의 공공건축은 타당성이 충분해야 하며 건축 수준도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도시의 유적지구 곳곳에 유적의 관리 혹은 출토 유물의 전시를 위한 건축물들이 지어져 왔는데 그 수준이 대체로 낮다는 것이 세미나에 참석한 건축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둘째,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은 유적과 조화를 이루고 유적을 돋보이게 하는 수준 높은 건축물이어야 하며, 반드시 전통 한옥형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관은 벽체가 일반 건물보다 높아야 하는데 그 위에 한옥 지붕을 얹을 경우 건물이 과도하게 크고 높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전통 한옥에서는 지붕이 건물 전체 입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건축과 문화재 분야에서 각각 6명의 전문가가 나서 경주 월성이라는 상징적인 유적지구에 어떤 공공건물을 지을지 논의하는 세미나의 분위기는 어떨까.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필자는 서로 날카롭게 상대 분야를 비판하는 냉랭한 분위기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간 건축과 문화재 분야는 서로 상반된 방향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서로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세미나의 분위기는 열띠었으나 차분하고 진지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성급하게 비판하기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참석자들의 열린 마음이 읽혔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어서 2011년에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이코모스는 ‘역사도시 및 도시지역의 보호와 관리를 위한 발레타원칙’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역사도시에서 유적의 가치와 환경, 곧 맥락을 존중하는 현대 건축 요소의 도입은 도시를 풍요롭게 하고 도시의 연속성이라는 가치를 살리는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있으니 그것은 새로운 건축이 역사지구의 공간 구성에 부합하고 그곳의 전통적인 형태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특정한 맥락을 이루는 유럽의 역사도시와 달리 지상에 구조물이 전무해 신축 건물이 두드러지기 쉬운 우리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서는 이런 지침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세미나의 소득 가운데 하나는 참석자들이 우리 역사도시의 경관적 특수성에 대해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 새로 짓는 건물은 매장 문화재를 피해 지하를 주로 활용하고 지상으로 노출되는 부분을 제한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우리의 특수한 현실 속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수준 높은 생각에 이른 것이다.
유적이 즐비한, 그러나 현대생활이 지속되는 역사도시에서 새로운 건축을 하는 것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서로 다른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와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에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런 공론의 장을 통한 소통은 서로 다른 생각을 좁히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높은 생각에 이르게 해 준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2017-05-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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