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다’는 평범하다. ‘이겨 내다’라고 해야 힘을 실은 듯하다. ‘살다’는 그저 그렇다. ‘살아 내다’라고 해야 역경을 딛고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처럼 비쳐진다. 단독으로 쓰이는 ‘이기다’와 ‘살다’는 예사롭지만, ‘내다’와 결합한 말들은 이렇게 예사로움의 경계를 살짝 넘는다.
‘이겨 내다’, ‘살아 내다’는 ‘꿋꿋하다’는 이미지를 덧붙여 문장의 주체를 더 드러내고 미화한다. 누군가 이렇게 표현하기 시작하자 한때 유행이 됐고, 지금은 일상이 됐다. ‘힘들어도 이겨 내야 한다’, ‘우리는 살아 내야 해’…. 이처럼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들이 있다.
“트럼프는 유엔에서 애국주의를 강조했다.” ‘강조하다’는 앞의 내용을 평이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이건 중요해’라는 의미도 함께 던진다. 다분히 말한 사람의 의도가 반영된 말이다. 그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연결된다. ‘트럼프는 유엔에서 애국주의를 말했다’는 이러한 것과 거리를 둔다.
때때로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 말을 옮길 때 ‘강조했다’고 하면 그를 대변하는 게 될 수 있다. ‘객관’을 버리고 ‘주관’을 선택한 것이 된다. 어쩌면 강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wlee@seoul.co.kr
‘이겨 내다’, ‘살아 내다’는 ‘꿋꿋하다’는 이미지를 덧붙여 문장의 주체를 더 드러내고 미화한다. 누군가 이렇게 표현하기 시작하자 한때 유행이 됐고, 지금은 일상이 됐다. ‘힘들어도 이겨 내야 한다’, ‘우리는 살아 내야 해’…. 이처럼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들이 있다.
“트럼프는 유엔에서 애국주의를 강조했다.” ‘강조하다’는 앞의 내용을 평이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이건 중요해’라는 의미도 함께 던진다. 다분히 말한 사람의 의도가 반영된 말이다. 그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연결된다. ‘트럼프는 유엔에서 애국주의를 말했다’는 이러한 것과 거리를 둔다.
때때로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 말을 옮길 때 ‘강조했다’고 하면 그를 대변하는 게 될 수 있다. ‘객관’을 버리고 ‘주관’을 선택한 것이 된다. 어쩌면 강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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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