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이선애(82) 상무. 태광그룹을 취재하던 2006년 2월, 칼바람 속에 서울 장충동 언덕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됐다.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안방마님을 직접 만나 볼 수는 없었지만 손에 쥔 그녀의 컬러사진에는 도도함과 강렬함이 물씬 묻어났다.
팔순을 넘긴 그녀가 장충동 2층 양옥집을 지키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기택이라는 야당 거물 정치인 동생을 둔 덕에 군사정권 시절 호되게 당했다. 틈만 나면 세무조사가 나왔고, 남편 이임용 전 태광 회장은 죽기 전까지 정치 알레르기를 보였다. 문 밖에서건 문 안에서건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기업은 정치와 연결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가르쳤다. ‘찍히면 죽는다.’는 본능적 위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태광이 은행 돈을 거의 안 쓰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했다. 이선애나 이임용인들 태광을 재계 서열 상위에 올려놓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은행에서 돈을 왕창 얻어 기업을 키웠다가 느닷없이 회수라도 하는 날에는 어떠했을까. 엄혹했던 시절, 이임용·이선애 부부는 이런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태광이 ‘베일에 싸인 오너’ ‘은둔의 기업’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런 태광이 또 한번 세찬 풍파를 만났다. 자칫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형국이다. 풍전등화 속에 태광의 대모(大母) 이선애 상무가 버티고 있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인 이 상무는 말이 상무이지, 이 회장 위세를 능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태광의 연원을 보면 이선애가 태광의 막후 실력자이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태광의 모체는 1954년 부산 문현동에 세워진 태광산업사이다. 이임용과 중매결혼한 이선애는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남편 이임용을 합류시켰다. 일본 유학생 출신인 이임용은 이 전까지만 해도 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이임용과 오늘의 태광을 일군 창업동지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 역시 이선애의 남동생이다. 또 이기택이 있다. 정치의 단맛보다는 쓴맛을 본 이임용과 이선애다. 정치의 정자(字)도 꺼내지 말라는 이들 부부의 철학은 태광의 기업철학이 됐다. 하지만 태광의 탈(脫)정치 전통은 아들 대(代)에 와서 허물어진다. 형의 사망으로 경영권을 쥔 이호진 회장이 섬유기업 태광을 금융과 방송기업으로 재편하면서 금기시했던 정치영역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1조원이 넘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무기로 정·관계 로비를 통해 기업 확장을 꾀한 의혹을 사고 있다. 정치 쪽으로 눈도 돌리지 말라는 선대의 기업철학이 자식 대에 와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면서 무너졌다.
처음엔 이호진 회장도 부친의 경영스타일을 따라했다. 언론은 물론 전경련에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청바지 차림으로 현장에 등장해 직원들과 소통하는 소탈한 경영행보를 보였다.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최고경영자(CEO)가 안 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경영권을 둘러싼 어머니 이선애 상무와의 갈등이 파국을 낳았다는 일각의 견해도 있으나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현재로서는 검찰의 수사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전방위 수사라는 게 맞다. 그렇지만 세법 상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단순히 오너가의 지분 편법 증여 차원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이 것이 사실이라면 세법이 아닌 다른 법률 위반 혐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혐의가 그중 하나다. 태광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치가 기업경영에 개입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태광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무조사는 막아냈지만 심장을 파고드는 검찰의 칼끝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ykchoi@seoul.co.kr
최용규 사회2부장
태광이 은행 돈을 거의 안 쓰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했다. 이선애나 이임용인들 태광을 재계 서열 상위에 올려놓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은행에서 돈을 왕창 얻어 기업을 키웠다가 느닷없이 회수라도 하는 날에는 어떠했을까. 엄혹했던 시절, 이임용·이선애 부부는 이런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태광이 ‘베일에 싸인 오너’ ‘은둔의 기업’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런 태광이 또 한번 세찬 풍파를 만났다. 자칫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형국이다. 풍전등화 속에 태광의 대모(大母) 이선애 상무가 버티고 있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인 이 상무는 말이 상무이지, 이 회장 위세를 능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태광의 연원을 보면 이선애가 태광의 막후 실력자이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태광의 모체는 1954년 부산 문현동에 세워진 태광산업사이다. 이임용과 중매결혼한 이선애는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남편 이임용을 합류시켰다. 일본 유학생 출신인 이임용은 이 전까지만 해도 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이임용과 오늘의 태광을 일군 창업동지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 역시 이선애의 남동생이다. 또 이기택이 있다. 정치의 단맛보다는 쓴맛을 본 이임용과 이선애다. 정치의 정자(字)도 꺼내지 말라는 이들 부부의 철학은 태광의 기업철학이 됐다. 하지만 태광의 탈(脫)정치 전통은 아들 대(代)에 와서 허물어진다. 형의 사망으로 경영권을 쥔 이호진 회장이 섬유기업 태광을 금융과 방송기업으로 재편하면서 금기시했던 정치영역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1조원이 넘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무기로 정·관계 로비를 통해 기업 확장을 꾀한 의혹을 사고 있다. 정치 쪽으로 눈도 돌리지 말라는 선대의 기업철학이 자식 대에 와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면서 무너졌다.
처음엔 이호진 회장도 부친의 경영스타일을 따라했다. 언론은 물론 전경련에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청바지 차림으로 현장에 등장해 직원들과 소통하는 소탈한 경영행보를 보였다.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최고경영자(CEO)가 안 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경영권을 둘러싼 어머니 이선애 상무와의 갈등이 파국을 낳았다는 일각의 견해도 있으나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현재로서는 검찰의 수사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전방위 수사라는 게 맞다. 그렇지만 세법 상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단순히 오너가의 지분 편법 증여 차원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이 것이 사실이라면 세법이 아닌 다른 법률 위반 혐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혐의가 그중 하나다. 태광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치가 기업경영에 개입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태광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무조사는 막아냈지만 심장을 파고드는 검찰의 칼끝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ykchoi@seoul.co.kr
2010-10-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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