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의 노동을 묻는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건

[이윤경의 노동을 묻는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건

입력 2019-09-15 22:30
수정 2019-09-1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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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 토론토대 사회학과 교수
이윤경 토론토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에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듣게 되는 가장 당황스러운 이야기 중 하나는 여성의 지위가 너무 많이 신장됐다는 것이다(아, 내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나…).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을 못마땅해하며, 능력 있는 직장 여성 동료를 저평가하고, ‘미투 운동’을 심히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우리 세대가 젊은이였던 30~40년 전과 비교하는 것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2019년 한국은 거의 모든 기준에서 가부장 사회이고, 여전히 남성이 훨씬 많은 특권과 권력을 행사하는 강고한 구조에 기반해 있다.

성평등을 측정하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개 경제활동, 교육, 보건과 안전, 정치적 권한 등에서 나타나는 남녀 간 격차를 비교한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8년 성 격차 지표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49개국 중 115위에 해당했다. 4개 지표 중 경제활동 영역에서 남녀 격차가 가장 심각했다. 한국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56%로 남성에 비해 20% 정도 낮다.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가 임금 100을 받을 때 63을 받는다. 여성 노동자의 반 정도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이들은 남성 정규직 임금의 40%를 받는다. 중위 임금의 3분의2 이하를 받는 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라고 할 때, 한국 여성 노동자의 35%가 해당돼 OECD 최고 수준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 여성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설사 취업이 된다 해도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나쁜’ 일자리에 집중돼 있으며, 일하는 여성의 3분의1이 16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라는 이야기다.

여성이 경험하는 성 격차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하는 여성은 도소매업, 숙박음식, 보건복지, 교육 분야에 집중돼 있고, 고강도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여성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 자체를 남성 중심 사회가 정하기 때문이고, 여성의 노동을 싼값으로 매기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여성은 가사와 돌봄노동의 주요 전담자가 되고, 이 여성의 노동은 ‘무급’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최근에도 한국 남성이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은 주 6시간인 반면 여성은 25시간 가사노동을 한다. 이런 가사노동 남녀 격차 또한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와 일상적인 성차별, 그리고 끝임 없이 재생산되는 “그래서 여자는 안 돼”라는 담론까지 생각해 본다면 한국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경험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너무나 강고한 콘크리트 천장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여성의 집합적, 조직적, 정치적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하는데, 한국 여성은 이점에서도 심각한 격차를 경험한다. 남성 노동자의 13.4%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는 반면 여성 노동자 조직률은 5.8%이다. 한국 5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3%에 불과한데, 그중 3분의2에는 여성 임원이 아예 단 한 명도 없다. 공공기관 고위 공무원 여성 비율은 7%이고, 여성 국회의원 비중은 (그나마 비례대표 여성 할당 50%를 도입한 덕분에) 17% 정도 된다. 모든 분야에서 성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 없이는 이런 심각한 여성 배제는 자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남녀 공히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경쟁 과정이 공정해야 하는 것은 성평등 자체가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로운 과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기회, 직종과 분야, 임금과 승진, 직장 조직과 문화, 그리고 퇴근 후 가정과 가사노동에서 차별과 저평가가 일상화하면 이는 한 사회가 발전할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고, 인적 자원이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배치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차별은 부당하고 불의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인맥ㆍ학맥을 이용해 부당 취업을 하고 부당 이익을 취하는 것에 분노한다. 동시에 우리는 남성이기 때문에 취업이 더 쉽고, 더 좋은 일자리의 기회가 생기고, 더 많은 임금을 받고, 더 빨리 승진이 되고, 가사 및 돌봄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에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모두 지난해보다는 성평등한 추석을 보내셨기를 바란다.
2019-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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