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내 집 주소를 지워 없앴다
내가 사는 거리의 이름을
모든 길의 방향을 나는 바꾸었다
이제 그대가 날 찾아야 한다면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도시에서건
어느 거리에서건
아무 문이나 두드려 쳐라
이 저주, 이 축복
자유 가득한 곳이면 어디나 나의 집인 것을
50년 지난 낡은 사진첩 속에서 이 시를 발견했을 때 마음 안으로 사슴 한 마리가 뛰어들어 왔다. 집주소를 지워 없애는 것, 이 일이야말로 자신의 아집을 지우는 일 아니겠는가? 자신만이 최고라는 아집,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허름한 주장, 볼품없는 이 생각의 레일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밟고 있는 당신은 또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가. 이 세상 어느 도시, 어느 거리의 아무 문을 두드려도 열리는 사랑. 인간이 꿈꾸는 지선의 세상이 여기 머물지 않겠는가. 인도에서 암리타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생명의 물, 감로수의 의미를 지닌다. 소방서의 벽에서 물을 붓는 암리타의 벽화를 볼 때마다 사랑은 뜨거운 불의 주소를 지나 자유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곽재구 시인
2021-07-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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