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우한 폐렴과 헌법 7조 1항

[오늘의 눈] 우한 폐렴과 헌법 7조 1항

이범수 기자
이범수 기자
입력 2020-01-21 22:12
수정 2020-01-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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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중국 우한 폐렴’증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발 항공기 입국자들이 열감지카메라가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2020. 1.9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국내서 ‘중국 우한 폐렴’증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발 항공기 입국자들이 열감지카메라가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2020. 1.9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한 번 떠올려 보자. ‘공무원’ 하면 어떤 인상이 뇌리 속을 스치는지. 술 먹다 슬금슬금 사무실로 돌아와 초과수당 찍는 ‘얍삽이’, 무능해도 해고당할 일 없는 ‘철밥통’, 민원인이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갑 오브 갑’ 등 부정적인 이미지들뿐이다. 길 가는 시민에게 물어봐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공무원 관련 기사의 댓글 창이 항상 시끌벅적한 것도 국민의 불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그간 공무원들이 헛발질을 하며 자초한 바가 크다.

역설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공무원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요즘 중앙부처들은 대세에 편승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공무원들이 직접 출연해 하루 일상을 보여 주는 영상이 주를 이룬다. 막내 사무관이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회의에 들어가고, 점심을 먹고, 사실 별 내용은 없다.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건 “대한민국 톱 엘리트네”, “행시(행정고시) 붙었으면 끝판왕”과 같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존경한다”는 말도 적지 않다. 자신과 층위를 구분하며 고시에 합격한 공무원들을 다른 세상 사람 보듯 한다.

이쯤 되면 헷갈린 만도 하다. 실제 공무원은 국민의 시각 중 어느 쪽에 서 있나. 지난 4개월 동안 중앙부처를 취재하며 겪어 본 공무원들은 ‘얍삽이’나 ‘철밥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과수당 3만~4만원 챙기겠다고 술잔을 기울이다 들어가는 공무원을, 할 일이 없어 시간이나 때우는 공무원은 보지 못했다. 선망의 눈빛에 우쭐해 어깨에 힘주고 엘리트입네 하는 공무원은 또 어떠한가. 적어도 내 경험치로는 어느 한쪽으로 그들을 규정 짓기는 힘들었다. 물론 ‘을’보다는 ‘갑’에 가깝다는 기자이기에, 출입처가 제한적이기에 내가 아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삶과 맞닿은 수많은 공간에 국민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공무원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해 평균 공무원 20여명이 과로로 죽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조차도 2년여 전 공무원들의 과로사를 기획기사로 다루며 알게 됐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 헌법 7조 1항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이들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가축방역관들, 불길 속 몸을 던지는 소방공무원들이 그렇다. 너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나왔다. 사람 간 전파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설 명절 대이동을 앞두고 있어 확산 우려가 크다. 보건당국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테다. 긴장감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차피 조직 논리에 의해 사라질 얍삽이나 철밥통, 갑질 공무원에게 냉소를 보내기보다 헌법 7조 1항을 가슴에 품은 이들에게 ‘선플’ 하나 달아 주면 어떨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느라 고생한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모습 멋있다’ 이런 긍정의 언어들 말이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이범수 정책뉴스부 기자
이범수 정책뉴스부 기자


2020-01-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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