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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내가 촉이 좀 좋잖아?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내가 촉이 좀 좋잖아?

입력 2024-03-15 04:01
업데이트 2024-03-15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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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에 대한 우스개 하나. 어떤 사람이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는 보자마자 대뜸 혀를 찬다. 큰일 났네. 집 마당에 대추나무 있지? 하지만 그의 집엔 마당도 대추나무도 없다. 아뇨? 없는데요? 점쟁이가 바로 받아친다. 다행이야.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점이나 예언은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절대 틀릴 수 없다는, 그러니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의 우스개일 것이다.

살다 보면 ‘촉’이란 말을 하는 사람을 더러 만난다. 내가 촉이 좀 좋잖아. 내 촉이 굉장히 정확하거든. 촉이란 뭘까. 신이 준 선천적인 능력?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갈고 닦아 이르게 된 어떤 경지?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피차 아직은 잘 모른다. 그저 웃으며 예의 바르게 서로를 탐색하는 사이. 그런데 왠지 느낌이 싸하다. 이런 경우 그 사람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두 가지 중 하나로 결론이 나게 된다. 처음엔 별로였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참 진국이네. 역시 사람은 오래 봐야 돼. 아니면 처음 볼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니만 결국엔. 처음부터 내가 그랬잖아. 느낌 싸하다고. 내가 촉이 있다니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들일까. 처음부터 호감을 주더니 결국 막역한 사이가 되는 사람? 처음엔 사람 좋아 보이더니 결국 실망을 주는 사람? 처음엔 영 아닌 것 같았는데 알수록 매력적인 사람? 처음부터 싸하더니 결국 흉악하기 그지없음이 드러난 사람?

생각해 보면 촉이란 것은 함부로 신뢰할 것이 못 된다. 그것은 아마도 편견이나 선입견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선과 악의 양극단에 서 있는 악인과 성자를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약간의 악과 선을 같이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의 선하거나 악한 모습은 마주치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때론 드러나거나 숨겨질 것이다.

그런 모든 모습의 총체적인 합이 바로 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만나는 사람은 때에 따라 한 인간의 입체적 면모 가운데 일부를 보게 되고 그 모습에 때론 실망하고 때론 감탄한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그 사람의 실체에 대한 뭔가를 알게 된다.

물론 인간 관계에 예민하고 남들보다 사람의 특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들은 있다. 정신과에서도 그것을 직관(intuition)이라 부르며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의 촉이 좋다고 규정하는 순간 늪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촉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상대방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관계에서 닥쳐올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세월을 겪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진면목은 끝내 보지 못할 위험성도 있다.

‘촉이 좋다’며 상대방에 대한 빠른 판단을 자신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빠른 손절을 통해 상대로부터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려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촉이 좋다’는 자평은 알고 보면 ‘상처받기 싫어. 그냥 편견의 장막 뒤에 남겠어’라는 고백 아닌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모두를 믿기 어려운 현실을 은유하는.

이효근 정신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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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 정신과의사
이효근 정신과의사
2024-03-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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