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이렇게 중차대한 관심사가 된 이유는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아이의 앞날이 결정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모든 학부모들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학벌 위주의 병폐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도록 모든 것을 바칠 수밖에 없으며, 대학으로 가는 최대의 관문인 수능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94년부터 시작된 수능 제도는 한 해씩 번갈아 가면서 어려운 수능(불수능)과 쉬운 수능(물수능)을 되풀이하여 수험생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정부가 직접 나서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1%가 나오도록 쉽게 출제하겠다고 공언을 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고3 교실을 또다시 극도의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정부가 그런 공언을 한 본래의 정치적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 동안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목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은 학벌 위주의 사회 통념과 그에 따른 대학의 서열화, 그리고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순과 관련된 그런 문제를 한 해 입시의 난이도 조절로 해결하려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권위적인 탁상 행정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백년지계인 교육에 정치가 개입함으로써 초래한 파국을 우리는 수없이 지켜보았다.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40여년 세월 동안 입시 제도와 교육 제도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기억조차 하기 어렵다. 정략적인 개입으로 인한 교육 정책의 변화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는가.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사회는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건만, 어떻게 된 것인지 정치 분야의 권위주의적 발상은 결코 변하지 않고 있다.
권위적인 정치 개입이 초래한 현재의 황폐한 고등학교 교실을 보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피 말리는 내신 관리를 해야 한다. 게다가 각종 봉사활동 등과 같은 교외 활동도 병행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파김치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단 한 번의 시험 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수능 시험까지 대비해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온갖 눈치 보기를 하면서 여러 대학 수시와 정시에 원서를 접수하고, 논술과 면접을 또 따로 준비해야 한다. 초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다.
더 이상 학생들을 정치화된 교육의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도 그러했으니….’, 혹은 ‘경쟁 사회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기성세대가 겪은 입시 지옥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서도 안 된다. 지옥 같은 학교, 엉터리 입시 제도를 개선하여 선진 한국에 걸맞은 올바른 교육 제도를 정립할 수 있도록 참교육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이다.
오늘 아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경쾌하게 등교하는 딸을 본다. 고등학교 시절 등교할 때 기운 없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이 가을을 맞아 ‘국문인의 밤’을 주최하면서 싱그러운 가을 하늘로 빛나는 젊음의 기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입시 지옥으로부터 해방된 우리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면서, 우중충한 독서실에서 축 처진 어깨로 문제집을 풀고 있을 예비 수험생들을 떠올리노라면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2011-11-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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