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북ㆍ미 및 북ㆍ일 수교는 이 지역 평화 구축의 길에 남은 마지막 과제들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마련된 6자회담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한 것은 두 개의 양자관계가 아직 실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탓이 크다. 북ㆍ미 사이에는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서 변화가 예상된다. 남는 것은 북ㆍ일 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전화회담에서 북ㆍ일 정상회담 개최에 기대를 표명한 것은 적절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우선하는 데 있다.
과거에도 일본은 6자회담에서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면서 북핵을 둘러싼 논의의 전선을 흩트린 적이 있다. 행위자가 많을수록 의견 수렴이 어려운 다자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양자 사이에는 신뢰가 부족하고, 다자주의로는 의견 수렴이 어려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다양한 삼각형을 운영하는 데 해답이 있다. 남북과 북ㆍ미를 연결해 남ㆍ북ㆍ미 구도가 논의되는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이미 제도화된 3자 정상회담의 틀이 있다. 5월 9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3국 정상회담에서 두 가지 역할(2Ls)을 자임해 세 가지 메시지(3Ps)를 던지고, 5가지 협력 의제(DEPTH)를 제안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
한국은 동아시아 평화 구축의 선도국가(Leading State)로서 이 지역의 평화 구축 과정에 중국의 건설적 역할과 일본의 관여를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화해협력의 연계국가(Linker State)가 돼 남북 분단, 북ㆍ일 분단, 중ㆍ일 분단이 중첩된 동아시아 대분단선을 봉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도쿄에서 우리 정부가 평화를 연결하고(Peace Connected), 번영을 연결하고(Prosperity Connected), 사람을 연결하자(People Connected)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남북 화해에 대한 일본의 의구심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화해와 북ㆍ미 화해, 그리고 북ㆍ일 화해를 연결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일본의 인도태평양구상을 연결하며, 이 지역의 시민과 국민과 인민을 연결해 동아시아의 과제를 나의 과제로 인식하게 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하는 기초가 마련될 것이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내년 20주년 성년을 앞두고 이제 깊이(DEPTH)를 더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정부가 다음의 5가지 협력 의제를 제시해 이에 집중한다면 3국 정상회담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산파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동아시아 안전공동체의 창출을 목표로 한 재난 대비(Disaster Preparation) 노력이다. 방사능 모니터링 한·중·일 위원회와 같은 것이 시초가 될 수 있다. 둘째,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공동대응으로 한층 더 경제적 통합(Economic Integration)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사람들의 소통과 교류(Personal Exchange)에 장벽을 없애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 종단철도를 완성해 피스보트의 육로판으로 한·중·일 청춘열차를 운행해 본다면 어떨까? 넷째, 진실과 화해(Truth and Reconciliation)를 위한 노력이다. 3·1운동과 5·4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 새로운 100년을 위한 한·중·일 신역사 선언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마지막으로 한·중·일 평화인문학공동체(Humanities Community)를 만들어 보자. 한·중·일은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한 평화의 염원으로 오래 지적 분투를 전개해 온 곳이다. 이를 엮어 인류의 공공지로 제공하자.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마련된 봄의 씨앗을 북ㆍ미 정상회담으로 움트게 할 단비가 될 수 있다.
2018-04-27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