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큐멘터리 ‘보드랍게’ 개봉
故김순악 할머니 귀국 뒤 삶 초점
유곽·식모 생활도…이후 日만행 고발
박문칠 감독 “다양한 모습 들여다봐”

다큐멘터리 영화 ‘보드랍게’의 주인공 김순악 할머니가 생전 즐겨 작업하던 압화 작품을 들고 있는 모습. 인디플러그 제공
위안부, 요시코, 기생, 마마상, 엄마, 할매, 왈패, 술쟁이, 순악씨. 김순악(1928~2010) 할머니를 부르는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인권운동가 외에 여러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2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보드랍게’는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김순악’의 삶을 섬세하게 짚는다.

“피해자를 떠올렸을 때 ‘순백의 피해자’만 존재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악도, 피해와 가해도 흑백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다양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보드랍게’를 연출한 박문칠 감독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작품에서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019년 대구지역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아카이브를 접한 박 감독은 직설적이고 강단 있는 김 할머니의 매력에 빠졌다.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인터뷰, 생전 영상과 증언 등의 자료를 직조해 할머니의 삶을 조명한다. 처음과 끝에는 할머니의 별명과 이름들을 여성들의 목소리로 하나씩 부른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살아온 할머니를 온전히 기억하려는 연출 의도가 녹아 있는 부분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귀향’(2016), ‘허스토리’(2018), ‘아이 캔 스피크’(2017), ‘김복동’(2019) 등 위안부를 다룬 작품이 꾸준히 나왔다.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겪은 피해와 할머니들이 1991년 이후 위안부 운동에 참여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와 달리 ‘보드랍게’는 피해와 운동 사이 수십년 침묵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주목한다.

경북 경산에 살던 김 할머니는 열여섯 살 때 대구 실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동네 아저씨를 따라갔다가 만주로 끌려간다.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유곽에서 일하기도 하고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로 ‘색시 장사’를 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15년간 식모로 생계를 유지했다. 2000년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한 후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고, 생활비를 모은 전 재산을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써 달라며 기부했다.
영화는 할머니의 증언 중 일부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 그 시대를 견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디플러그 제공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인 김 할머니가 다시 성매매 산업으로 흘러 들어간 데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완전무결한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준다.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간 인권 운동을 하며 친구, 동지들을 만나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변화도 담아낸다.

할머니의 증언은 ‘미투’ 운동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낭독한다. 박 감독은 “성폭력 피해와 위안부 피해는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점도 있다”며 “현재와 과거의 피해자가 영화를 통해 소통하며 과거의 일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고민했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2021년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초이스’ 심사위원 특별언급, 202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름다운 기러기상’,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볼수록 무궁무진하다. 활동가 등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2, 3차의 영향도 있다”며 “관련 작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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