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야심에 눈먼 푸틴 총리 세계유산 바이칼호 폐수 허용

정치적 야심에 눈먼 푸틴 총리 세계유산 바이칼호 폐수 허용

입력 2010-01-22 00:00
수정 2010-01-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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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호수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가 한 남자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오염될 위기에 처했다.

●호수인근 펄프생산 금지법 폐지안 서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종이, 펄프 생산을 금지한 환경법 시행령 폐지안에 서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로써 지난 40여년간 바이칼 호수에 폐수를 무단 방류해오다 2008년 환경부의 시정조치로 문을 닫았던 시베리아 최대의 제지회사 바이칼스크가 운영을 재개하게 됐다.

환경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푸틴 총리의 이번 조치는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거물 기업인의 편의를 봐준 것이며 동시에 2012년 대선에 앞서 표밭을 다지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바이칼스크는 푸틴 총리의 친구인 억만장자 올레그 데리파스카 베이직 엘리먼트 그룹 회장이 49%의 지분을 소유한 회사다. 데리파스카의 측근들은 그가 공장을 살리기 위해 푸틴 총리와 정부 고위관료들에게 로비를 펼쳤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크렘린궁으로부터 가장 많은 구제금융을 얻어내기도 했다.

차기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푸틴 총리는 바이칼스크를 회생시킴으로써 시베리아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최근 지방을 순례하며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방문해 고용안정과 자금지원을 약속하는 장면으로 TV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지난 8월 미니잠수함을 타고 바이칼 호수의 수심 1.4㎞까지 내려가 “호수 바닥이 아주 깨끗하며 환경적인 피해가 전혀 없다.”고 중계방송을 하며 바이칼스크 회생을 암시하기도 했다. 푸틴의 대변인도 이번 시행령 폐지로 1만 6000명의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 “친분있는 제지회사 편의 봐준것”

1966년 설립된 바이칼스크 공장은 해마다 20만톤의 펄프와 1만 2000톤의 종이를 생산해왔다. 바이칼 호수의 물을 원료로 생산된 펄프는 러시아의 핵탄두 제조에도 쓰여왔다. 환경단체는 이 공장이 유해한 다이옥신과 유황 화합물을 무단으로 바이칼 호수에 방출해 바이칼물범 등 수백여종의 고유생물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환경단체가 2008년 10월 바이칼스크와 벌인 소송에서 승리한 뒤 러시아 환경부는 공장에 폐수 정화시설을 설치할 것을 명령했지만 바이칼스크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지난해 2월 공장 문을 닫고 2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지난해 3월 회사가 파산절차에 들어가자 직원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로만 바즈헨코프 활동가는 “푸틴 총리는 호수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20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다.”면서 “화학물질 범벅인 폐수 방출을 허락한 것이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2010-01-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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