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100 m 앞까지 장벽 설치·기내 승객 실랑이에 전투기 출격
1일 아침(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 검색대를 막 통과한 교민 김모씨가 공항 보안요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10㎝ 남짓한 샴푸 용기가 규정 사이즈를 초과했다며 보안요원이 압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에도 이것을 갖고 비행기를 탔는데 오늘은 왜 안 되느냐.”고 따졌지만, 보안요원은 단호한 표정으로 “여기에 버리기 싫으면 다시 나가라.”고 묵살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지 꼭 한달을 맞은 이날 미국의 풍경은 분명 한달 전과는 달랐다. 일반 시민의 표정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주요 시설 경계 요원들의 눈빛은 보복테러의 우려로 바짝 긴장돼 있다.한달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곳은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이다. 그전에 관광객들은 정문 쪽 담장까지 다가가 사진을 찍고 백악관 전경을 구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곳으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곳까지밖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았다. 어쩔 수 없이 관광객들은 먼 발치서 콩알 만한 백악관 전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백악관 후문 쪽으로 돌아가 구경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얀 백악관 건물 지붕 위에는 검은 전투복에 소총을 두른 무장 경비병 두어명이 수시로 주위를 감시하며 서성이고 있다.
‘메트로센터’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 안에도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무장 경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승객들을 감시하고 있다. 추레한 행색에 큼지막한 가방을 둘러맨 행인에게는 어김없이 의심의 눈초리가 꽂힌다.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곳은 역시 공항이다. 9·11테러가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였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승객이나 승객들을 검색하는 보안요원이나 모두 긴장한다. 전에는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 정도만 꺼내면 됐는데 요즘은 액체 용기도 모두 꺼내 놓으라고 아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달 29일 사소한 소동 때문에 미 공군 F16 전투기가 출격한 웃지 못할 사건은 지금 미국의 보복테러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날 워싱턴DC 덜레스 공항을 떠나 가나로 향하던 여객기 안에서 앞뒤 승객끼리 등받이를 젖히는 문제로 몸싸움이 일어나 비행기가 30여분 만에 회항하자 테러를 우려,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출동한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1-06-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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