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경제문제 워낙 압도적…연정붕괴·사임 가능성 적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무사할 것인가.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제국을 타격한 ‘뉴스오브더월드’의 휴대전화 해킹 파문이 영국 경찰, 정치권과 언론 간의 부적절한 밀월관계로까지 번지면서 캐머런 총리가 위태롭다.
최근 ‘해킹 정국’에서 캐머런 총리는 왕실인사들에 대한 휴대전화 해킹 건으로 2007년 뉴스오브더월드 편집장직을 사임한 앤디 쿨슨을 작년 5월 총리 공보 책임자로 복귀시킨 일로 1차 구설수에 올랐다.
여기에 더해 올 1월 쿨슨이 해킹을 독려했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옴에 따라 공보책임자에서 물러난 지 2개월 뒤인 3월 관저에서 그를 만난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 여론의 화살은 더욱 거세졌다.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인사를 중용한데다 파문이 커진 뒤에도 교류를 계속한 것은 일국의 지도자로서 판단력을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다.
또 뉴스오브더월드의 운영 주체인 뉴스 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CEO)로, 해킹 사태와 관련해 지난 17일 체포됐다가 풀려난 레베카 브룩스와 여러차례 회동을 가진 사실도 캐머런 총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경찰이 뉴스 인터내셔널 측에 정보를 주는 대가로 향응과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캐머런 총리에게는 악재다.
캐머런도 최근 아프리카 순방 일정을 단축한데서 보듯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의회도 해킹 파문과 관련한 캐머런 총리의 대국민 연설을 위해 여름철 휴회를 늦추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캐머런 총리가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블레어 전 총리는 이라크전쟁에 발목이 잡혀 인기가 추락한 끝에 ‘당내 쿠데타’로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의 다수 정치전문가들은 현재 유럽을 강타한 최악의 재정 위기로 인해 다음 선거의 최대 화두는 경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 파문이 캐머런의 명줄을 좌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 모리의 정치 조사 책임자인 헬렌 클리어리는 해킹 사건이 다음 선거에서 표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앞서고 있지만 주된 문제는 역시 경제”라고 말했다.
위기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EG)의 유럽 책임자인 볼판고 피콜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리자면 유로존에서 걱정해야할 것이 여전히 많이 있다”며 “현재 연립정부(보수당+자유민주당)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총리가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킹 정국이 지나고 나면 다시 부상할 것으로 보이는 의원들의 세비 과다 청구 스캔들에 여야 의원들이 공히 연루돼 있기 때문에 야당이 해킹 스캔들의 반사이익을 챙기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캐머런 총리와 함께 영국 경찰도 이번 사태의 수렁에 갈수록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미 런던 경찰청의 폴 스티븐슨 청장과 존 예이츠 치안감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데 이어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이 18일 이번 해킹 파문을 계기로 불거진 경찰의 비리의혹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밝히면서 대대적인 칼바람이 예고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 경찰 조직이 받고 있는 혐의는 크게 두가지다. 2006년 처음 불거진 뉴스오브더월드의 휴대전화 해킹사건과 관련,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던 2009년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조기종결했다는 의혹과 경찰 고위 관계자들이 언론사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고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영국 경찰로서는 내년 런던올림픽을 테러위협에서 지켜내야 하는 사상 최대의 과업을 앞두고 최악의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