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다문화주의.동화주의 대충돌 직면

유럽 다문화주의.동화주의 대충돌 직면

입력 2011-07-25 00:00
수정 2011-07-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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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와 9.11테러로 다문화주의 비판 거세져



노르웨이 연쇄 테러를 계기로 유럽에서 다(多)문화주의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테러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장문의 성명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과 다문화주의가 유럽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항하는 ‘유럽의 내전’이 이미 시작됐으며, 이번 테러는 그 전쟁의 일환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문화주의의 위험성을 알리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 테러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무엇인가 = 다문화주의란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에 따라 개별 민족국가들이 갖고 있던 기존 문화에 이주.난민 등으로 유입된 다른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교류, 포용하는 것을 뜻한다. 각국의 이민자 정책은 크게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 정책으로 나뉜다.

동화주의는 이민자들이 기존 문화와 종교, 사회적 질서와 가치, 언어 등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문화와 가치’에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을 융화 또는 흡수시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이민 오기 전 지녔던 사회적 가치와 문화, 종교 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무지개처럼 각각의 색을 인정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위적으로 하나의 색으로 통일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을 막고 다양성을 통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부분 국가들이 칼로 나눈 듯이 분리해 어느 하나 만을 택하고 있지는 않다. 실질적으론 각국과 이민의 역사적 배경 및 현실에 따라 무게중심을 달리 설정하고 적절히 혼용하고 있다.

◇ 관용과 조화 중시하는 유럽식 다문화주의 = 유럽의 경우 미국과 달리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식민시절부터 시작된 이주민 역사는 더 길다.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엔 일손이 모자라 정책적으로 한국과 터키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극 유치하기도 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넘지 못했다. 후손 중 상당수가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시 빈곤층으로 전락하며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또 이들에 대한 복지 지출도 더 늘어나고 문화적ㆍ사회적 충돌도 자주 일어났다.

이에 따라 유럽식의 다문화주의에 기반한 정책들이 시행됐다.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민자들이 원래 지녔던 고유의 문화를 그대로 인정할 뿐 아니라 이를 적극 지원해주자는 정책이 골간이다. 또 해당국 시민권이나 국적을 취득한 공식 이민자나 그 후손들 뿐 아니라 상당수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자신들이 이룩한 복지국가의 혜택을 나눠 주었다.

서구식의 가치관과 문화에 접했으나 수십년을 살았으면서도 이민국의 언어 조차 잘 모르는 부모 세대와의 갈등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부모와 고유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이들이 적극 교육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다문화주의 지지자들의 입장이다.

◇ 9.11과 경기침체로 휘청거려 = 유럽연합(EU)이 확대, 심화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이민도 가속됐다. 그러나 공교롭게 유럽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실업자가 늘고 주택난이 심화됐으나 재정적자로 복지 부문 지출이 감축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노력은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서’ 자신들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아 가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진 것. 이런 불만은 전에도 있었으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슬람권 이민자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질적으로 여기고 있었으나 묵과하고 있던 기독교 전통의 유럽 백인들에게 9.11테러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심어 줬다. 이슬람의 본래 종교적 모습은 테러와 관계없으며 극단주의자들과 대부분 무슬림을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은 입지가 좁아졌다. 스위스에서 이슬람 사원 건축 불허 주민투표가 통과되고 이슬람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이 법으로 금지되는 등의 일은 유럽이 바뀌고 있다는 상징일 뿐이다.

◇ 정치인들 잇따른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10월 “다문화 사회를 건설해 함께 어울려 공존하자는 접근법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TV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다문화주의는 실패한 것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역시 최근 다문화주의 실패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는 발언을 했다.

주요국 정상들의 잇따른 발언은 반외국인 정서 특히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극우정당이 차원이 아닌 정치권의 주류로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기성 정치권도 극우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해 이런 주장을 일부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 사회 갈등의 뿌리 해소해야 = 그러나 이에 대해 무책임하고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유럽 언론은 이번 사건에 경악하면서 무차별 살상까지 정당화하는 브레이비크의 사고방식은 결코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며 강력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들은 이를 ‘정신이 이상한 젊은이의 돌연변이적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순한 치안 강화와 대테러 대책 만으론 또다른 비극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세포의 돌연변이’, 즉 ‘사회적 암’이 자라날 수 있었던 데는 극우파의 득세와 이를 용인 또는 지지하는 정치ㆍ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나아가 다문화주의 논란으로 표출되고 있는 유럽 사회의 빈부 문제와 복지 문제 등을 둘러싼 내부적 갈등이 근본적인 토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테러를 계기로 다시 붙불고 있는 다문화주의 논쟁을 생산적으로 진행하고, 이슬람권 이민자 문제를 포함해 유럽 사회의 내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들을 마련해 나아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슬람과 극우 나아가 극좌 등 어느 쪽 테러도 완전히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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