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여걸 3인방’은
‘온건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세상을 바꿔온 철의 여인들.’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올해의 선택은 ‘엄마’의 이름으로 싸워온 ‘여걸 3인방’이었다.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설리프(72) 대통령과 평화운동가인 리머 보위(39), 예멘 인권 운동가 타우왁쿨 카르만(32)이 주인공이다. 2004년 케냐의 여성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에게 상을 건넸던 선정 위원들은 올해 혁명의 바람이 북아프리카·중동 지역을 강타하자 또 한번 제3세계 여성에게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노벨위원회가 세계 여성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여성 지도자를 선정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위원회도 “수상자들이 평화 구축 활동에 헌신하면서 여성들의 안전 및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폭력적으로 투쟁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예멘의 반독재 투사를 공동 수상자로 결정해 ‘아랍의 봄’(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파장을 고려했다.
라이베리아 출신으로 2003년 내전 종식을 함께 이끌었던 엘런 존슨-설리프(왼쪽)와 리머 보위가 최근 나란히 앉아 밝게 웃고 있다.
세계여성기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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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내전이 낳은 두 명의 영웅
수상자 중 존슨-설리프 대통령과 보위는 라이베리아 2차 내전이 낳은 영웅이다. 라이베리아는 14년간의 내전 끝에 2003년 ‘독재자’ 찰스 테일러 대통령 축출에 성공했고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인 존슨-설리프가 2006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남성에게 권력이 집중됐던 아프리카에서 선거를 통해 여성이 당선된 것만으로도 기적은 시작됐다. 그는 이후 6년간 폐허가 된 조국에 가능성의 씨앗을 뿌렸다. 세계은행과 씨티은행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재무 전문가인 존슨-설리프 대통령은 강도 높은 재정정책으로 나랏빚을 줄였다. 강력한 추진력과 협상을 바탕으로 미국 등으로부터 채무 탕감 약속을 받아내는 등 지난해 9월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빌렸던 빚을 모두 갚았다.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치적 투쟁도 치열하게 벌였다. 1970년대 후반 윌리엄 톨베르트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으나 새뮤얼 도의 군사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되자 도를 비난하는 연설로 투옥됐다가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재집권을 노리는 존슨-설리프 대통령이 다음 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재선에 파란불이 켜졌다. 그는 슬하에 네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보위는 ‘여성의 힘으로 검은 대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내전 기간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소년 병사의 심리 상담을 주도했고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평화운동을 벌였다. 그가 여성의 투표 참여를 이끈 덕에 설리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보위는 또 ‘평화구축 여성 네트워크’(WIPNET)에 가입한 뒤 지도력과 조직 능력을 인정받아 지도자로 올라섰다. 내전 기간 중 여성들에게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해 남자들이 총을 버리게 하라.”고 압박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 다큐멘터리 영화 ‘프레이 더 데블 백 투 헬’(Pray the Devil Back to Hell·2008)의 중심 인물로 알려졌다.
●예멘의 반정부 시위 이끈 여전사
언론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카르만의 수상은 노벨위원회가 ‘재스민 혁명’을 위해 애쓴 모든 시민들에게 보내는 ‘응원가’다. 그는 올해 초부터 예멘의 반정부 시위를 이끌었다. 2005년 비정부기구인 ‘자유 여성 언론인’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신장 등을 위해 일하며 잔뼈가 굵었다.
예멘 야당 ‘이슬라’의 당원으로 현실 정치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사나 자유의 광장에서 주기적으로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카르만은 “예멘 민주화 시위대의 승리”라며 “모든 ‘아랍의 봄’ 운동가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소감을 말했다. 올해 들어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시위를 조직해 지난 1월과 3월 두 차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남편과의 사이에 3명의 자녀가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1-10-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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