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월가 시위 한달] 타임스스퀘어 反탐욕 점령

[反월가 시위 한달] 타임스스퀘어 反탐욕 점령

입력 2011-10-17 00:00
수정 2011-10-1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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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혁명의 날… 금융 권력에 반격 나서자”… 짙어가는 뉴욕의 가을

15일(현지시간) 오후 4시 30분쯤 미국 뉴욕 월가 점령 시위의 본거지인 맨해튼 남쪽 주코티 공원엔 수천명이 운집해 있었다. 그래서 시위대가 이날 처음 ‘점령지’로 삼은 타임스스퀘어에는 많아야 1만여명 정도가 참여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나 택시를 잡아타고 얼마 안 가 예상이 완전히 틀린 것을 깨달았다. 타임스스퀘어에 도착하기도 전에 6번가 양옆 인도에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대가 1㎞도 넘게 줄을 잇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오늘처럼 많은 시위대는 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위대의 주장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기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타임스스퀘어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놀랐다. 집회 예정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벌써 광장 대부분을 수만명의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기자는 인파에 밀려 ABC방송국 앞쪽까지 갔고, 거기서 거의 1시간을 ‘갇혀’ 있었다. 리더도 없고 마이크도 없는 시위대는 누군가 육성으로 “우리는 99%다.”라고 선창하면 다 같이 목청껏 따라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파산했는데 은행은 구제받았다.” “내 돈은 어디에 있나.”등의 구호를 번갈아 외치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고, 방송국 전광판 뉴스에 ‘월가 점령 시위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자막이 나오자 시위대는 광장이 떠나갈 듯 환호했다.

시위대 사이에 낀 경찰이 터준 길을 따라 겨우 광장 북쪽으로 빠져나갔다. 거기엔 좀 빈 공간이 있어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우레 같은 함성이 터졌다. 광장 양옆의 6번가와 8번가 쪽에서 다른 무리의 시위대가 구름처럼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미리 와 있던 시위대는 기뻐 펄쩍펄쩍 뛰며 그들을 맞았다. 시위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이 정도 인파를 예상했느냐고 물었다. 뉴저지에서 왔다는 밥 던(24)은 “지난 5일 노조가 참여했을 때처럼 많으면 1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광장이 이 정도 들어찼으면 10만명은 되는 것 같다.”면서 “12월 31일 제야의 밤 행사 때보다 인파가 많아 보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학 졸업 후 2년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그는 고무된 표정으로 “오늘은 글로벌 혁명의 날”이라고 했다.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었기에 경찰은 오토바이로, 기마경찰로 시위대를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 달려 역부족을 드러내며 후퇴했고, 그때마다 시위대는 환호했다.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이 빚어질라치면 “이것은 비폭력 시위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서로 자제시키는 성숙한 시위문화를 보여줬다. 숨 막히는 듯한 인파에 갇혀 이제는 정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시위대는 “전 세계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 등의 구호를 산발적으로 외치며 1시간 이상을 시위하고서 7시가 넘어서야 스스로 흩어졌다. 이날 시위로 최소 88명이 체포되긴 했지만 인파에 비해서는 지극히 평화적인 시위였다.

시위대는 이날 뉴욕의 심장부인 타임스스퀘어를 완벽하게 ‘점령’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파워를 확인한 시위대의 동력을 멈추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이 보였다.

뉴욕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1-10-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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