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비 코브라’ ‘머스탱’ 등 고출력 자동차들의 디자이너이자 카레이싱 선수이기도 했던 캐럴 셸비가 89세를 일기로 지난 10일 댈러스의 베일러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캐럴 셸비 라이선싱’사(社)가 11일 발표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셸비는 앞서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폐렴으로 입원중이라고 밝혔었다.
한때 양계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셸비는 카레이싱 우승자, 카레이싱팀 소유자, 자동차 자문, 그리고 사파리 투어 여행사 사장 등 다채로운 경력을 보유한 인물이며 그가 디자인한 스포츠카인 ‘셸비 코브라’는 자동차와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1960년대 포드자동차를 시작으로, 크라이슬러와 제너널모터스까지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 모두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한 극소수의 인물 중 한명인 그는 최고 시속 320km에 최고 출력을 기록한 포드의 ‘머스탱 셸비 GT500(2013 포드 셸비 GT500)’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1923년 1월 11일 텍사스주(州) 리즈버그에서 태어나 세계 2차대전때는 육군항공대 비행교관으로 복무했으며 1945년 제대 후 덤프 트럭 사업을 시작했다가 접고 양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초기에 번창했지만 이후 닭들이 병사하면서 파산의 아픔을 겪었다.
이후 한 친구의 권유로 1950년대 카 레이서가 됐고 1959년 힘들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자동차 마라톤 경주인 ‘르망’에서 우승하는 등 자동차 경주에서 수십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드라이버’에 두차례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심각한 심장이상으로 1959년 카레이싱을 포기했으며 1990년 6월 동맥류로 숨진 34살 남성의 심장을 이식받았고 1996년에는 아들 마이클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미국내 최장수 심장 이식환자 중 한명으로도 기록됐다.
’르망’ 대회에서 우승할 때도 “혀 밑에 (심장병 치료제인) 니트로글리세린 약을 넣고” 경주에 나섰다는 셸비는 이 경기 후 레이싱을 포기하고 이후 ‘셸비 코브라’와 ‘머스탱 셸비 GT500’으로 대변되는 ‘고출력 자동차(muscle cars)’ 디자인의 길로 들어섰다.
포드의 엔진과 한 영국 스포츠 자동차의 차대를 사용한 경량급 로드스터인 ‘코브라’가 1962년 뉴욕오토쇼에 출품됐을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자리매김했다. 1964년 ‘립 코즈(Rip Chords)’의 “헤이 리틀 코브라”가 빌보드차트의 5위권에 들면서 이 자동차는 팝 문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때 셸비가 직접 몰았던 1966년식 코브라는 2007년 경매에서 미국 자동차 사상 최고가인 550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포드는 이어 1964년 그에게 고성능 자동차인 ‘머스탱’을 주문했다. 셸비에게 젊은 구매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머스탱’을 디자인해주도록 주문한 인물은 리 아이아코카 당시 사장으로, 아이아코카는 셸비가 너무 집요해 사무실에서 쫓아내기 위해 자금과 포드의 8기통 엔진을 내줬다고 종종 농담하기도 했다.
셸비는 에너지 위기가 닥쳤던 1970년대에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12년간 사파리 투어 여행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귀국했을때는 크라이슬러로 자리를 옮겼던 아이아코카 사장이 다시 그에게 고성능 스포츠카인 ‘바이퍼(Viper)’를 디자인해주도록 주문했다.
아이아코카는 11일 성명을 통해 “그는 위대한 내 친구로, 우리는 진짜 훌륭한 작업들을 함께 했었다”고 회고했다.
1992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셸비는 최근 수년간 포드의 기술자문으로 일해왔으며 올해 초 선보인 662마력의 8기통짜리 ‘2013 셸비 GT500’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빠른 자동차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가 시승했던 이 모델은 지난 1월 한 자선경매에서 35만달러에 팔렸다.
포드의 웹사이트에는 “’좋아하는 차가 뭐냐’고 질문을 받을때면 항상 ‘다음 나올 차’라고 대답해왔다. 오늘 밤에 만들 차가 내가 좋아하는 차다”라는 셸비의 글이 올라와 있다.
유족으로는 아내 클레오 셸비와 3명의 자녀, 그리고 6명의 손자와 4명의 증손자가 있다.
연합뉴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셸비는 앞서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폐렴으로 입원중이라고 밝혔었다.
한때 양계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셸비는 카레이싱 우승자, 카레이싱팀 소유자, 자동차 자문, 그리고 사파리 투어 여행사 사장 등 다채로운 경력을 보유한 인물이며 그가 디자인한 스포츠카인 ‘셸비 코브라’는 자동차와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1960년대 포드자동차를 시작으로, 크라이슬러와 제너널모터스까지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 모두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한 극소수의 인물 중 한명인 그는 최고 시속 320km에 최고 출력을 기록한 포드의 ‘머스탱 셸비 GT500(2013 포드 셸비 GT500)’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1923년 1월 11일 텍사스주(州) 리즈버그에서 태어나 세계 2차대전때는 육군항공대 비행교관으로 복무했으며 1945년 제대 후 덤프 트럭 사업을 시작했다가 접고 양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초기에 번창했지만 이후 닭들이 병사하면서 파산의 아픔을 겪었다.
이후 한 친구의 권유로 1950년대 카 레이서가 됐고 1959년 힘들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자동차 마라톤 경주인 ‘르망’에서 우승하는 등 자동차 경주에서 수십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드라이버’에 두차례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심각한 심장이상으로 1959년 카레이싱을 포기했으며 1990년 6월 동맥류로 숨진 34살 남성의 심장을 이식받았고 1996년에는 아들 마이클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미국내 최장수 심장 이식환자 중 한명으로도 기록됐다.
’르망’ 대회에서 우승할 때도 “혀 밑에 (심장병 치료제인) 니트로글리세린 약을 넣고” 경주에 나섰다는 셸비는 이 경기 후 레이싱을 포기하고 이후 ‘셸비 코브라’와 ‘머스탱 셸비 GT500’으로 대변되는 ‘고출력 자동차(muscle cars)’ 디자인의 길로 들어섰다.
포드의 엔진과 한 영국 스포츠 자동차의 차대를 사용한 경량급 로드스터인 ‘코브라’가 1962년 뉴욕오토쇼에 출품됐을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자리매김했다. 1964년 ‘립 코즈(Rip Chords)’의 “헤이 리틀 코브라”가 빌보드차트의 5위권에 들면서 이 자동차는 팝 문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때 셸비가 직접 몰았던 1966년식 코브라는 2007년 경매에서 미국 자동차 사상 최고가인 550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포드는 이어 1964년 그에게 고성능 자동차인 ‘머스탱’을 주문했다. 셸비에게 젊은 구매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머스탱’을 디자인해주도록 주문한 인물은 리 아이아코카 당시 사장으로, 아이아코카는 셸비가 너무 집요해 사무실에서 쫓아내기 위해 자금과 포드의 8기통 엔진을 내줬다고 종종 농담하기도 했다.
셸비는 에너지 위기가 닥쳤던 1970년대에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12년간 사파리 투어 여행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귀국했을때는 크라이슬러로 자리를 옮겼던 아이아코카 사장이 다시 그에게 고성능 스포츠카인 ‘바이퍼(Viper)’를 디자인해주도록 주문했다.
아이아코카는 11일 성명을 통해 “그는 위대한 내 친구로, 우리는 진짜 훌륭한 작업들을 함께 했었다”고 회고했다.
1992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셸비는 최근 수년간 포드의 기술자문으로 일해왔으며 올해 초 선보인 662마력의 8기통짜리 ‘2013 셸비 GT500’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빠른 자동차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가 시승했던 이 모델은 지난 1월 한 자선경매에서 35만달러에 팔렸다.
포드의 웹사이트에는 “’좋아하는 차가 뭐냐’고 질문을 받을때면 항상 ‘다음 나올 차’라고 대답해왔다. 오늘 밤에 만들 차가 내가 좋아하는 차다”라는 셸비의 글이 올라와 있다.
유족으로는 아내 클레오 셸비와 3명의 자녀, 그리고 6명의 손자와 4명의 증손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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