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시아 스캔들’ 위기에서도 홍석현 특사 15분간 면담
문재인 대통령의 대미 특사인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것을 계기로 새 정부의 한미 간 정상외교가 본격화했다.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 10일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양국 정상외교의 시동을 건 지 불과 일주일 만으로, 양국 정상 채널간 소통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국이 이미 다음 달말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된 이후 우리 정부 측 대표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 특사로는 처음으로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홍 특사를 영접했으며, 예정 시간을 넘겨 15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외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 고문, 매슈 포틴저 NSC 동아태 선임보좌관이 ‘깜짝’ 배석했다.
특히 이날은 그동안 미 정국을 뜨겁게 달군 ‘러시아 스캔들’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이 결정되고 공화당에서조차 탄핵 주장이 나오는 등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 특사에 대한 전례없는 예우는 지난해 하반기 탄핵 정국 이후 이어진 한미 정상외교 공백 사태와 ‘코리아 패싱’ 논란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대미 인식이 과거 노무현 정부와 유사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상당부분 씻어냈다는 점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긴밀히 협조해 결과를 만들어 내길 기대한다”며 새 정부와 긴밀한 공조를 통한 북핵 해결 의지를 확인했다.
또 지난 정상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문 대통령이 보낸 한글 ‘궁서체’로 적힌 A4용지 2장 분량의 친서를 받고서는 “너무 아름답고 멋있다”며 “문 대통령에게 감사의 말을 잘 전달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해법에서도 문 대통령과 인식의 거리를 좁히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가 “현재는 압박과 제재 단계에 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engagement)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언급하며 ‘평화’라는 단어를 쓴 것은 처음이어서,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온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도 적잖은 힘을 싣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관여’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북한과의 대화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과 제재라는 ‘힘’에 기반한 협상을 해나가자는 의미를 전한 것”며 “문 대통령이 대화에 열려있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해석했다.
양국은 이에 따라 앞으로 북핵 대응에 있어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면서도, 북한의 가시적인 태도 변화가 있을 경우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전제 조건’을 놓고서 구체적인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홍 특사 면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비용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 ‘뜨거운 감자’는 테이블 위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사드 배치 문제는 홍 특사와 맥매스터 NSC 보좌관이 별도로 40분간 나눈 대화 속에서 협의가 진행됐다.
홍 특사가 먼저 “국내적으로 민주적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다. 국회에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맥매스터 보좌관은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입장과 상황을 존중한다”고 답하는 수준의 ‘탐색전’이 오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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