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참사의 기록]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공항 노숙하는 이재민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공항 노숙하는 이재민들

곽소영 기자
곽소영 기자
입력 2023-02-16 14:15
업데이트 2023-02-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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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표 구하려 ‘20시간’ 노숙 대기
가족 시신 수습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한숨과 울음이 뒤섞인 아다나 공항
샌드위치 나눔 봉사로 따뜻함 나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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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아다나 공항에 항공권을 미처 예매하지 못한 이재민들이 여유분 표의 현장 발권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15일 아다나 공항에 항공권을 미처 예매하지 못한 이재민들이 여유분 표의 현장 발권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가족이 죽어서 빨리 가야 한다. 언제쯤 표가 나오는지 알려달라.”

15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아다나 공항은 가족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러 가거나 이미 시신을 수습하고 온 이들, 무너진 삶의 터전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이들의 한숨과 울먹임이 뒤섞여 있었다. 미처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취소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이곳저곳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 갔다. 공항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깁스를 한 사람,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도 유독 많았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튀르키예 남부 지역의 공항인 이곳은 지진 직후에도 유일하게 하늘길이 열려 있었다. 최근 지진 피해로 폐쇄됐던 가지안테프 공항과 하타이 공항이 다시 운영을 재개하면서 참사 초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한산해졌다. 하지만 이재민을 비롯해 피해지역으로 왔다 돌아가는 현지인이 몰리면서 아다나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표는 이틀 뒤인 17일까지 모두 동이 난 상태였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공항에서 표를 사기 위해 노숙을 하기도 했다. 에세(13)도 어머니, 동생과 함께 안탈리아로 가기 위한 비행기 표를 구하고 있었다. 공항 구석 의자에서 기다리던 에세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며 동생을 안고 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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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에세가 동생과 함께 아다나 공항에서 안탈리아로 가는 표를 구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에세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13살 에세가 동생과 함께 아다나 공항에서 안탈리아로 가는 표를 구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에세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온라인으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공항 안에 있는 현장 발권대에 이름과 연락처를 등록한다. 취소 표나 여유 좌석이 생기면 이름이 적힌 순서대로 비행기 표를 받을 수 있다. 집이 사라졌거나 지진 피해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들은 공항에서 20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간인 오전 8시쯤 공항에는 이미 300여명이 몰려들었다.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드러눕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가족들과 함께 카라만마라슈를 떠나온 카딜(29)은 “지진으로 일자리를 잃었다”며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이 모두 붕괴됐다”고 울먹였다.

비행기 표를 구하느라 공항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야만 하는 이재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샌드위치를 나눠주기도 했다. 하루 샌드위치 1000개를 주문해 매일 공항에서 나눔 봉사를 하는 하칸(40)은 “지금은 생업을 이어가기보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돕는 게 우선”이라며 “거대한 재난이라 수습이 어렵지만,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질 때까진 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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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칸이 아다나 공항에서 대기 중인 이재민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하칸이 아다나 공항에서 대기 중인 이재민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공항에는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진 피해지역을 찾아 시신을 수습하고 다시 돌아가는 현지인도 적지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온 아첼리아(21)는 지진으로 사촌 4명을 모두 잃었다. 아첼리아는 “일자리를 구하러 카라만마라슈에 갔다가 모두 죽었다. 시신을 찾은 뒤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사촌이 죽고 홀로 남겨질 아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걱정된다”고 했다.
아다나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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