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가 1939년 12월 14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뒤 비비언 리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ACME 제공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0736_O2.jpg)
ACME 제공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26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가 1939년 12월 14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뒤 비비언 리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ACME 제공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0736.jpg)
26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가 1939년 12월 14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뒤 비비언 리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ACME 제공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ACME 제공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홍보 담당자인 리사 골드버그는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조용히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0년대 초반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 왔다.
드 하빌랜드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드 하빌랜드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눈에 띄어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4년 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드 하빌랜드는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성격의 멜라니 역을 차분하게 소화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 영화 출연 배우 중에서도 마지막 생존자였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흑인 하녀 매미 역할을 한 해티 맥다니엘에게 수상을 양보했다.
![드 하빌랜드가 1939년 작 ‘닷지 시티’에서 에롤 플린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둘은 영화계에서 환상의 짝꿍으로 통했다. AFP 자료사진](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1102_O2.jpg)
AFP 자료사진
![드 하빌랜드가 1939년 작 ‘닷지 시티’에서 에롤 플린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둘은 영화계에서 환상의 짝꿍으로 통했다. AFP 자료사진](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1102.jpg)
드 하빌랜드가 1939년 작 ‘닷지 시티’에서 에롤 플린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둘은 영화계에서 환상의 짝꿍으로 통했다.
AFP 자료사진
AFP 자료사진
고인은 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비비언 리가 오스카를 수상한 블랑셰 두보아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말까지 영화에 계속 얼굴을 내밀어 1986년 ‘아나스타샤’(Anastasia: The Mystery of Anna)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 101회 생일을 몇 주 앞둔 2017년 국왕 탄신일 서작 및 서훈 목록에 이름을 올려 백작부인 칭호를 받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8년 11월 17일 백악관에서 드 하빌랜드에게 국가예술 훈장을 수여하면서 다정하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1315_O2.jpg)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8년 11월 17일 백악관에서 드 하빌랜드에게 국가예술 훈장을 수여하면서 다정하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1315.jpg)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8년 11월 17일 백악관에서 드 하빌랜드에게 국가예술 훈장을 수여하면서 다정하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드 하빌랜드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에 출연했으며 2013년 먼저 세상을 떠난 고(故) 조앤 폰테인이다. 둘은 자매가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록을 세웠지만 사이가 나빠 의절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1942년 나란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동생이 수상하면서 더 벌어졌다. 특히 1946년 드 하빌랜드가 결혼한 마커스 굿리치에 대해 폰테인이 이러쿵저러쿵한 것이 화를 돋웠으며 자매는 1975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치료를 놓고도 아웅다웅했다. 물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말도 섞지 않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끝내 화해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자매 배우 드 하빌랜드(왼쪽)와 여동생 조앤 폰테인의 1945년 모습. AFP 자료사진](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0905_O2.jpg)
AFP 자료사진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끝내 화해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자매 배우 드 하빌랜드(왼쪽)와 여동생 조앤 폰테인의 1945년 모습. AFP 자료사진](https://img.seoul.co.kr//img/upload/2020/07/27/SSI_20200727080905.jpg)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끝내 화해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자매 배우 드 하빌랜드(왼쪽)와 여동생 조앤 폰테인의 1945년 모습.
AFP 자료사진
AFP 자료사진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