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카자흐 사망자 발생… 건물 불타고 통신 마비(종합)

‘비상사태’ 카자흐 사망자 발생… 건물 불타고 통신 마비(종합)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입력 2022-01-05 23:01
수정 2022-01-06 00:4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가격상한제 폐지로 LPG값 폭등하자 시위 번져
일부 시위대, 경찰차에 불지르는 등 과격 시위
경찰, 최루탄·섬광수류탄 발포… 비상사태 선포
누르술탄·알마티 등서 전화·인터넷·방송 끊겨
러시아 “폭동 없이 평화적으로 사태 해결돼야”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카자흐스탄 곳곳에서 일어난 가운데 5일(현지시간) 최대 도시 알마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청사 근처에 시위대가 운집해 있다. 알마티 AFP 연합뉴스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카자흐스탄 곳곳에서 일어난 가운데 5일(현지시간) 최대 도시 알마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청사 근처에 시위대가 운집해 있다. 알마티 AFP 연합뉴스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반대하며 시작된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가 급속히 전국으로 확산한 데 이어 군경과의 무력 충돌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최대 도시 알마티 등 주요 지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지만 소요 사태가 계속되며 인명·재산 피해가 커지고 있다.

5일(이하 현지시간) 인테르팍스·AFP통신 및 중앙아시아 전문매체 유라시아넷 등에 따르면 전날 수천명의 시위대 중 일부가 경찰·보안군과 충돌하며 폭력 시위로 번진 알마티에서는 이날도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이날 오전부터 알마티 시청사 침입·점거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총격과 폭탄 소리 등이 들렸으며 시청사 앞에는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고 인테르팍스가 현지 특파원을 인용해 전했다. 또한 시청사 2층 창문 밖으로 불길이 치솟고 건물 전체가 연기에 휩싸이는 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퍼졌다. 시청사 인근 대통령 관저 건물에 불길이 치솟은 영상도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5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 거리에 전날 밤부터 계속된 대규모 시위 도중 방화로 인해 불에 탄 차량들이 방치돼 있다. 알마티 로이터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 거리에 전날 밤부터 계속된 대규모 시위 도중 방화로 인해 불에 탄 차량들이 방치돼 있다. 알마티 로이터 연합뉴스
전날 밤 알마티에서는 수천명의 시민이 참가한 대규모 가두행진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 손전등을 밝히는 것으로 LPG 가격 인하를 평화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여러 대의 경찰차·소방차·구급차를 불태우는가 하면 식당과 상점의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알마티 도심에는 장갑차와 진압 병력이 배치됐고,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고 최루탄·섬광수류탄을 던지며 시위대에 맞섰다. 시위는 밤을 새워 새벽까지 이어졌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 수는 5000명 이상이었다고 AFP는 전했다.

사태가 악화하자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5일 오전 1시 30분을 기해 알마티와 시위가 처음 일어난 카스피해 연안 망기스타우주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통행이 제한되고 집회·시위도 금지됐다.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폭력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아리한 스마일로프 부총리가 임시총리직을 맡게 된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정부와 군부를 공격하는 것은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며 시위 자제를 당부했다.

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상한제 해제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방화한 경찰차가 불타고 있다. 알마티 로이터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상한제 해제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방화한 경찰차가 불타고 있다. 알마티 로이터 연합뉴스
정부의 진압 노력에도 시위가 그치지 않고 확산되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알마티주 전체와 수도 누르술탄 지역까지 비상사태 선포를 확대하는 법령에 연달아 서명했다. 알마티와 누르술탄 지역에서 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국내외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일부 TV 채널도 방송을 중단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영방송 카바르24에 출연해 대규모 소요 사태로 인해 보안요원 중에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알마티에서 극단적 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민간인 500여명이 구타를 당했고, 경찰 1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정부 측 주장도 나왔다.

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상한제 해제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휴대전화 손전등을 밝혀 항의의 뜻을 전하고 있다. 알마티 로이터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상한제 해제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휴대전화 손전등을 밝혀 항의의 뜻을 전하고 있다. 알마티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정부가 추진한 LPG 가격 인상에서 촉발됐다. 정부는 가격상한제를 통해 생산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던 LPG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지급 중단하는 작업을 새해 첫날에 마무리했다. 석유·천연가스 생산이 주요 산업이지만 그에 대한 수요 또한 많은 남서부 망기스타우주에서는 불과 며칠 사이 주유소에서 ℓ당 60텡게(약 165원)에 팔던 LPG 가격이 120텡게로 2배나 급등했다. 차량용 LPG 가격 급등뿐 아니라 이로 인한 물류비용 증가와 전반적인 물가 급등이 예상되면서 지난 2일 이 지역에서 LPG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처음 시작됐다.

정부는 LPG 가격을 ℓ당 85~90텡게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종전 가격보다 낮은 50텡게까지 인하할 것을 요구했다. 진정되지 않은 항의 시위는 카자흐스탄의 경제 중심지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 등 전국으로 퍼졌다.

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진압 경찰이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방어벽을 만들고 있다. 알마티 A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진압 경찰이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방어벽을 만들고 있다. 알마티 AP 연합뉴스
카자흐스탄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 가까이 통치했고 지금도 대통령 위의 ‘상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의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사전 신고 없는 시위는 불법인 카자흐스탄에서 이번처럼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은 드문 일이라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형제 이웃 국가의 사건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며 “거리 폭동과 법 위반이 아닌 대화를 통해 법적, 헌법적 틀 안에서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