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치아, 갑부 페네치 유령회사 보도
탐사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피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몰타 시민들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수도 발레타의 성 조지 광장에서 갈리치아의 사진과 플래시를 켠 휴대전화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발레타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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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 다른 EU국가로 파장 확대 제기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 갈리치아의 짧은 삶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2년 전 있었던 유명 탐사보도 전문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사망 당시 53세) 피살사건의 파장이 계속되자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사건의 책임을 지고 현직 총리가 사임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몰타의 정재계가 모두 연루된 당시 사건이 다른 유럽국가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AFP통신 등은 30일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가 내년 1월 사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갈리치아 기자 피살 사건의 배후 인물이 재판에 넘겨지고 집권 노동당의 새 대표가 선출되면 자진 사임하겠다는 것이다.
2017년 10월 사망한 갈리치아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권의 부정부패 의혹을 폭로했던 유명 기자였다. 권력층의 비리를 캐는 보도로 생전에 암살 협박을 수없이 받았다. 그는 사망 6개월 전에 전 세계 부유층이 연루된 조세회피처 관련 유출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근거로 몰타 최대 갑부인 요르겐 페네치의 유령회사 ‘17블랙’을 기사화했다. 이 유령회사를 통해 몰타 고위인사들에게 뒷돈이 오간 의혹이었다. 또 ‘파나마 페이퍼스’에 언급된 회사 소유주가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스카트 총리는 이 같은 보도의 파장으로 그해 조기 총선을 실시해 재집권하기도 했다.
사건 직후 용의자 10명을 체포했던 검경은 2017년 말 이 가운데 범행 가담이 확인된 3명을 최종 확정해 수사를 벌여 왔다. 최근 사건을 사주한 인물과 이들 3명 사이 중개 역할을 한 남성이 형사책임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페네치의 연루 사실 등을 진술하며 2년여 만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페네치가 긴급체포된 지 3일 뒤 크리스티안 카르도나 경제부 장관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일주일 뒤 총리 비서실장인 케이스 스켐브리와 콘라드 미치 관광장관이 경찰 조사를 앞두고 연이어 사임했다.
일부 외신들은 이번 파장이 몰타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한다. EU에서 가장 작은 국가로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로 꼽히는 몰타의 부정부패에 다른 EU 국가 인사들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유럽의 지도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놀랄 만큼 말을 아껴 왔다”면서 “몰타는 ‘검은돈’의 경로로 알려져 있고, (부유층에) ‘황금여권’(거액에 시민권을 판매하는 여권)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2019-12-02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