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인종적 둔감함을 신랄하게 비판한 미국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가 지난 2015년 4월 7일 케네디 센터의 아이젠하워 극장에서 진행된 ‘백조의 호수’ 리허설 도중 브루클린 맥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AFP 자료사진
AFP 자료사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2015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첫 여자 수석 무용수로 임명돼 새 역사를 쓴 미스티 코플랜드는 지난주 이 극장이 ‘라 바야데르’ 작품을 기획하면서 인종차별적인 무용수 기용 때문에 두 백인 무용수가 온몸을 검정색으로 칠한 채 리허설에 임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녀는 나중에 트위터에다 “발레계에서 아주 민감한 주제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얘기하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뒤 많은 유명 발레 극단들이 유색인종 무용수를 기용하지 않고 대신 검정얼굴을 분장하게 하는 일들을 강행하는 사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공연 기획에 참가한 적이 없었던 코플랜드는 14세 러시아 무용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수많은 욕설 댓글이 달리는 바람에 삭제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을 다시 올렸다. 그러자 6만 4000개 이상의 좋아요!가 달렸고 수많은 응원의 글이 쏟아졌다.
러시아 발레 무용수들과 전문가들도 이 나라의 흑인 무용수 숫자가 워낙 적어 검정색 분장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린 극장장은 “이런 종류의 심각한 중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는 일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누구도 우리에게 불만을 제기한 적도 없고 이렇게 바라본 적도 없었다. 이건 존경심이 결여된 행동”이라고 꾸짖었다. 러시아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카로바 역시 모스크바 24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대목에서 이상한 일은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보통 일이다. 이런 게 예술”이라고 말했다.
‘라 바야데르’는 인도에서 일어난 일을 다른 희가극적 비극이다. 187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볼쇼이 극장에서 처음 공연됐을 때부터 검정 분장을 한 무용수들을 기용해왔다.
코플랜드는 늘 발레계의 다양성 부족과 인종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미국 안에서 목소리를 높여 온 인물이다. 열세 살이 될 때까지 발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신동 취급을 받았는데 발레를 시작한 지 여덟달 만에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 클라라 역을 연기할 정도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