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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이냐, ‘강력한 집단안보’ 우산이냐 … 전쟁 종식 갈림길

중립국이냐, ‘강력한 집단안보’ 우산이냐 … 전쟁 종식 갈림길

김소라 기자
김소라 기자
입력 2022-03-19 01:13
업데이트 2022-03-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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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4차 평화회담 막판 공방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 AP·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 AP·AFP 연합뉴스
21세기 유럽 최대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낳은 전쟁은 종식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4차 평화회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의 협상 테이블에 오른 합의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비가입과 즉각적인 휴전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우크라이나가 어떤 중립의 길을 걸을 것인지,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어떤 수준의 안보 우산을 제공할 것인지 등을 놓고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러시아가 자국에 유리한 패를 언론에 공개하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우크라이나가 “거짓말을 퍼뜨리지 말라”고 경고하는 등 신경전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나토 비가입” 접점... ‘중립국 vs ‘집단 안보보장’ 평행선
양국 외무장관의 발언과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양국의 협상 카드는 상당 부분 구체적으로 드러난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및 독일과 터키의 집단 안보보장을 요청했다. 또 크름반도와 자칭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 러시아군이 잔류할 것인지, 국경선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중립국’의 길을 걸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에 중립화 명시 ▲외국 군사기지의 주둔·외국 무기 유치 금지 ▲군비 축소다. 크름반도에서의 러시아 주권과 도네츠크·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 인정도 러시아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이다.

푸틴과 레제프 타이에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어 보존 ▲‘탈나치화’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나치화’는 친서방 노선을 걷는 우크라이나 정권의 축출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꼬리를 내렸다. 영국 BBC는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에서 신나치주의를 단속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면서 이같은 요구는 “푸틴의 체면치레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러 침공 시 ‘함께 싸워줄’ 핵보유국 찾는 우크라이나
양국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집단 안보보장’이라는, 타협이 쉽지 않은 각자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스웨덴 또는 오스트리아와 같은 중립국이 될 것을 제안했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에는 가입했지만 나토 등 어떤 군사동맹에도 일원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는 침공을 받았을 때 전쟁에 개입해줄 동맹국이 없음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는 이같은 제안을 거절했다. 러시아가 제안하는 중립국 모델로는 러시아로부터 안보를 지켜내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와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라는 실체적인 위협이 있으며, EU 역내의 공동방위라는 우산조차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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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연설’ 우크라 대통령에 기립박수 보내는 캐나다 의원들
‘화상 연설’ 우크라 대통령에 기립박수 보내는 캐나다 의원들 15일(현지시간) 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의사당에서 의원들과 초청 인사들이 대형 모니터 화면에 볼로디미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하기 위해 등장하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캐나디언 프레스 제공. 오타와 AP 연합뉴스 2022.3.16
우크라이나는 유사시 ‘함께 싸워줄’ 주변 국가들을 보장받는 새로운 방위 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식 안보보장 모델’이라고 불리는 구상은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받으면 집단 안보보장 참여국들이 즉각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게 골자다. 특히 집단안보 체제의 일원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가 핵무기 카드까지 꺼내든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강대강’으로 맞서줄 수 있는 강력한 동맹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협상단 일원인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18일 러시아 반정부 언론 메두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파트너 국가들이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모두에서 러시아와 똑같은 군사력을 갖기 원한다”면서 “우리가 새로운 동맹을 가짐으로써 모든 현대적 위험에 정확하게 대응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젤렌스키 측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핵 보유국 중 적어도 한 국가가 회담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영토 문제 놓고 푸틴·젤렌스키 마주앉나
우크라이나는 또 안보보장 참여국들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핵무기를 반환하는 대신 미국과 러시아 등이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한다는 1994년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포돌랴크 고문은 나토에 대해 “주로 정상회의를 여는 활동에 국한된 조직”이라고 비판하며 ‘우크라이나식 안보보장 모델’이 유럽에서 나토의 낡은 질서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도네츠크·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크름반도 문제 역시 협상의 고비로 작용하고 있다. 전세계에 평화의 수호자로 각인된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침략국인 러시아에 자국 영토를 떼어주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 지역에 살면서 우크라이나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주민들의 문제는 단순히 이들 지역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면서 영토 문제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양국 모두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 정상들 사이의 협상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이 스스로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
전쟁을 종식하는 합의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서방 국가들 간의 지난한 양보와 타협, 결단이 필요하다. 미국 CNN은 “막대한 손실을 입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양보를 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 서방 국가들의 안전 보장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의견,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역할을 푸틴이 수락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국민들이 정부의 ‘나토 비가입’ 카드를 수용하도록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제를 안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푸틴이 협상을 빌미로 시간을 끌며 전열을 재정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신도 여전하다. 푸틴은 침공 직전에도 막판 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외교와 대화를 ‘연막 작전’의 수단으로 사용한 바 있다. 푸틴은 자국군이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도 서방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는 푸틴이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사실상의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샘 그린 킹스칼리지런던 러시아연구소장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근본적인 합의는 서방이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푸틴이 스스로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집단 안전 보장 체제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리차드 윌콕스 전 유엔(UN) 및 아프리카연합(AU) 외교관은 미 정치외교 전문지 폴리티코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집단 안전 보장을 빌미 삼아 다시 자국에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중립성을 자국에 대한 충분한 안전 보장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도 정립돼야 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뿐 아니라 EU 가입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움직임이라며 2014년 크림반도 침공과 같은 군사행동으로 맞불을 놨다. 리차드 윌콕스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군사적) 중립성을 취하되 EU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향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열망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양국 모두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돌파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나토 가입이 좌절된 상황에서 EU 가입이 그나마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협상 카드이며, 러시아 역시 외교적 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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