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할머니가 돼 출소한 ‘일본 적군’ 우두머리 “50년 전 일 사과”

77세 할머니가 돼 출소한 ‘일본 적군’ 우두머리 “50년 전 일 사과”

임병선 기자
입력 2022-05-28 22:18
수정 2022-05-2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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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네덜란드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을 점거하도록 배후 조종한 혐의로 2000년 일본 오사카에서 체포돼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일본적군 우두머리 시게노부 후사코(왼쪽)가 28일 교도소에서 풀려나와 딸 메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출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교도통신 AP 연합뉴스
1974년 네덜란드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을 점거하도록 배후 조종한 혐의로 2000년 일본 오사카에서 체포돼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일본적군 우두머리 시게노부 후사코(왼쪽)가 28일 교도소에서 풀려나와 딸 메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출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교도통신 AP 연합뉴스
1970년대 세계 각국에서 많은 테러공격, 납치, 공중납치 사건을 일으킨 일본 극좌 테러조직 ‘일본 적군’의 공동 창립자인 시게노부 후사코가 20년의 형기를 마치고 28일 출소했다고 현지 NHK 방송과 영국 BBC가 보도했다. 올해 77세가 되는 시게노부는 이날 동일본성인교정의료센터를 출소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살아서 나왔음을 실감하고 있다”며 “50년 전 인질을 잡는 등 무고한 이들에게 사과하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시게노부는 1974년 네덜란드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 점거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았으나 수십년 동안 검거망을 피해 다녔다. 세 명의 적군 요원들은 대사와 수많은 다른 이를 인질로 붙잡아 100시간 동안 감금했다. 프랑스가 적군 요원 한 명을 석방했고, 이들은 시리아로 달아날 수 있었다.

30년 동안 중동 지역에서 살아 온 시게노부는 2000년 오사카에서 검거돼 살인미수와 불법감금 혐의로 기소됐다. 요르단에서 추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직접 테러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일본 법원은 2006년에 공격 계획을 짜는 데 일조했다며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그녀는 AF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반세기 전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납치 사건처럼 낯 모르는 무고한 이들에게 폐를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시게노부는 이전에도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습격으로 26명이 죽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시세노부 후사코(오른쪽)의 1985년 모습. AFP 자료사진
시세노부 후사코(오른쪽)의 1985년 모습.
AFP 자료사진
일본적군은 일본 내 극좌 단체인 ‘적군파(연합적군)’ 간부들이 1971년 레바논으로 건너가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연계해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2년 뒤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 습격 사건 등 숱한 테러 사건에 관여했다. 원래 두 개의 극좌 조직이 연합해 결성됐지만 분파 대립이 너무 심해 호전적인 요원들이 동료 14명을 집단 처형하는 끔찍한 만행으로 일본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경찰에 쫓기던 잔당 5명이 가루이자와 소재 아사마 산장에서 열흘 동안 30명의 사상자를 낸 무장농성 ‘아사마 산장 사건’은 NHK의 중계가 일본 방송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 90%를 기록하는 동시에 일본 좌파 운동에 있어 하나의 조종(弔鐘)이 됐다.

시게노부는 체포된 이듬해 일본적군의 해산을 선언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그룹의 마지막 행동은 1988년까지 이어졌다. 이탈리아에 있는 미군 클럽을 겨냥해 폭탄을 실은 트럭을 영내에 진입시키려 했다.

경찰은 아직도 검거하지 못한 일본적군 잔당 7명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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