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아들 원경스님의 ‘못다 부른 노래’

박헌영 아들 원경스님의 ‘못다 부른 노래’

입력 2010-07-21 00:00
수정 2010-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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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박헌영(1900-1956)이 남한에 남긴 유일한 혈육인 원경(圓鏡) 스님이 시(詩) 230편을 묶은 첫 시집 ‘못다 부른 노래’(도서출판 시인)를 냈다.

 원경스님은 박헌영의 두번째 부인인 정순년(2004년 작고)씨가 1941년에 낳은 아들로,부친 박헌영이 잠적한 후 어머니 정씨와도 헤어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10살 때 한산스님을 만나 화엄사에서 출가했다.

 박헌영은 1946년 남로당 창당 후 미군정에 쫓겨 북한으로 가 내각 부총리 겸 외무장관,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됐으나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미국의 스파이라는 죄목 등으로 체포돼 1956년 처형됐다.

 현재 평택 만기사(萬奇寺) 주지인 원경스님은 아버지 박헌영의 행적을 정리한 전집을 10여년의 노력 끝에 2003년 출간하기도 했다.

 원경스님의 시는 주변의 자연을 노래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월북한 공산주의자 아버지를 둔 탓에 고단하고 외로웠던 인생에 대한 회한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등이 묻어나는 시,배다른 누나 박비비안나씨를 만나러 러시아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들도 많다.

 “나의 민들레꽃아 너는 어디 있느냐/이쁜이는 혁명가 아버지 찾아 일본으로 갔는데/산이 높더냐 물이 깊더냐/내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영영 돌아오지 않았네/나는 그를 찾으려고 천신만고 온 세상 다 돌았건만/나의 민들레꽃은 정녕 찾지 못했네”(‘민들레꽃 2’ 중에서)“나는 이 세상에 무엇하러 왔던가/전설을 삼켜버린 외돌괴가 부럽구나/무예로 세월을 베어버린 그 시절이 꿈이었던가/지금까지 반딧불 같은 작은 희망을 안고/남몰래 소문없이 낙서를 해 온 것이/휴지조각 되지 말기를 얼마나 바랬던고/ 이제 벗들의 기억 속에 낙서를 남기게 되니/이 세상 사랑했던 벗들에게 부끄럽기만 하겠네”(‘외돌괴’ 중에서)원경스님은 “한산스님은 학교를 못 다닌 것을 원망하지 말고 만권의 책을 읽을 것을 권했으나 글쓰는 것은 삼갈 것을 당부하셨다”며 “한산스님은 ‘네가 성장하며 낙서한 글을 보면 저항적인 언구가 많으므로 지금부터 글쓰는 것을 삼가야할 것이다.지금까지 살아온 세상보다 더 험한 세상이 네 앞에 놓여 있으니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어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올해 고희(70)가 된 원경스님은 “사실 낙서와 다름없고 일기나 다름없는 것이 500여편 되기에 이번에 칠순을 맞아 지인들에게 나눠줬더니 책으로 묶어야 한다고 강권해 따르게 됐다”며 “‘시인’지에서 6월호에 내 시 스무편을 실어 본의아니게 칠순에 등단도 하게 됐다”라며 웃었다.

 스님과 동갑내기 친구인 김지하 시인은 “참으로 예쁘고 참으로 서럽고 또 참으로 웅장한,그야말로 가장 스님다운 선시(禪詩)다.진짜 선시(禪詩)는 이렇게 고른 것이다.삼천대천세계 이야기를 천수관음처럼 조근조근해야 선시(禪詩)지!”라고 칭찬하는 추천사를 썼다.역시 오랜 지기인 소설가 황석영,이해찬 전 총리의 추천사도 붙었다.420쪽.2만3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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