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완서, ‘더 아름다운 길’로 떠나다

故박완서, ‘더 아름다운 길’로 떠나다

입력 2011-01-25 00:00
수정 2011-01-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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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이 시대의 ‘나목’이 되어/문학의 언어로 위안과 행복의 열매를 나누어 주셨는데/이제 또 어디 가서 한 그루 ‘나목’으로 서 계시려고 하십니까”(정호승 조시 ‘선생님 ‘나목’으로 서 계시지 말고 돌아오소서’ 중)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씨가 지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먼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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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박완서 작가의 장례식이 열린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 영결식장에서 유족들이 발인예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박완서 작가의 장례식이 열린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 영결식장에서 유족들이 발인예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고인의 장례의식은 25일 오전 10시부터 생전 다녔던 구리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로 치러졌다.

최근 내린 폭설과 강추위 속에서 치러진 이날 장례미사에는 큰 딸인 작가 호원숙 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 등 여러 문학계 인사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각계 인사들도 함께 했다.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토평동 성당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린 장례미사는 권위와 허세를 버린 삶을 살았던 고인의 생전 모습처럼 소박하게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김성길 전임 주임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며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며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우아한 죽음’을 갈망했던 고인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며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며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또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이해인 수녀는 추모 기도에서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참으로 많이 사랑했고 많이 사랑받아 행복했노라고 겸손히 고백해온 우리의 어머니를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한 뒤 “헤어짐의 슬픔을 그저 또 울고 또 우는 것으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우리의 나약함을 굽어보시고, 진실하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지상의 소임을 다하고 눈오는 날 눈꽃처럼 깨끗하고 순결하게 생을 마무리하신 우리의 어머니를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울먹였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유해는 앞서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아들,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 있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로 운구됐다.

소복이 눈이 쌓인 묘지에 도착한 장례행렬은 고인이 평소 좋아했다는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우고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아들의 묘를 앞에 두고 남편과 나란히 묻히게 된 고인의 관 위에는 흰 국화 꽃잎과 흙이 덮였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 위로 눈물을 뿌렸다. 영하 10도에 이르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그 순간 따뜻한 햇살이 비쳤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청춘”이라던 노작가는 ‘부드럽고 따숩은’ 흙속에서 세상의 상처를 모두 지우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라고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마지막 문장에 밝힌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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