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풍경
걸쭉한 웃음을 터트리는 김지원(50) 작가는 서울 청담동 하이트컬렉션에서 ‘바람처럼’전을 열고 있다. 그의 말대로 전시장에는 바다가 가득하다. 짭쪼름한 냄새, 차디찬 바람이 솔솔 풍겨져 오는 풍경이다 보니 그림 뒤편 어디에선가는 싱싱한 회와 소주가 한상 차려져 있을 것만 같다.
원래 ‘맨드라미 작가’로 유명한 그다. 붉은 닭벼슬을 닮은 맨드라미를 집중적으로 그려왔는데 이번엔 텅빈 바다다. 사람 그림자나 배 한 조각 없는, 텅빈 바다다.
“작가들은 사생 같은 건 초기에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에는 잘 안 하는 편이잖아요. 저도 그랬고. 그런데 여행 중에 저도 모르게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서 그리고 있더라고요.”
아주 바지런히 쏘다닌 건 아니라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다 보니 방학 때, 그것도 인파가 없을 무렵인 늦여름이나 겨울에만 바다를 찾았다.
세상과 단절됐다는 느낌, 그 단절 속에서 파란 바다만이 눈앞에서 일렁이는 느낌이 좋았다. 바다를 실컷 그리고는 왜 바람 얘기를 꺼냈을까. “그림에 대한 제 태도랄까, 그런 생각에서 붙인 제목입니다.”
공지영의 소설 덕분에 이젠 널리 알려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문구를 예로 들었다. “그 말 뜻처럼 바람은 제게 정진이자 노력이에요. 언제나 잘 그린 그림보다 좋은 그림, 훌륭한 그림을 그리고 싶고, 또 노력해야죠.”
시인 신용목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그림은 ‘바다에 새겨진 바람의 어금니’, ‘인물에 새겨진 바람의 어금니’다. 내년 2월 27일까지. (02)3219-027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12-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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